2024.04.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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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2 마침표 찍은 학제개편..."중요한 것은 학습권"]

5월 4일 학칙개정안이 학교법인 이사회를 통과하면서 ‘유사중복학과 구조조정’이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한 달간 여러 차례 간담회와 서울캠퍼스 중심의 반대 움직임이 있었다. 글로벌캠퍼스에서는 유사중복학과 학생대표자 명의의 반대 입장문들이 게시됐다. ※ 학제개편 타임라인 기사

 

 

학교 구성원은 유사중복학과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이미 동의한 바 있다. 작년 11월 기획조정처가 교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84%가 통합에 찬성했다. 서울캠퍼스 총학생회가 3월에 실시한 ‘2022 학생요구안 설문조사’ 역시 참여자의 86.5%가 구조조정에 찬성했다.

 

그러나 학교 측이 이를 진행한 과정과 그 세부 내용은 학생 사회의 우려와 반발을 샀다. 외대알리는 학교가 정책을 추진하고, 학생들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는 부분을 짚어봤다. 또한 이와 관련한 학생대표자들의 목소리도 들어봤다.

 

"졸속 추진 속 반쪽짜리 소통"

 

4월 1일 학칙개정안이 처음 공지된 이후 학교법인 이사회를 통과하기까지 한 달 남짓 걸렸다. 한편 학칙 개정 절차인 ‘교무위원회→대학평의원회→법인이사회’ 세 차례의 회의를 거치는 데에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구조조정이 너무 급하게 진행된다는 우려에 박정운 총장(이하 '박 총장')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올해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또 “중복학과 교수들의 정년이 다가오는 시점에 통합이 빨리 이뤄져야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23년 입시부터 해당 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4월 30일까지 대학교육협의회에 입시 정보 수정안을 제출해야 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절차들이 급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학교 본부는 소통 속에서 학제개편을 진행했다고 주장하지만 학생들은 ‘반쪽짜리 소통’에 불과했다는 입장이다. 학교 측은 3월 말 유사중복학과 학생대표자와의 면담에서 이미 마련해놓은 구조조정안을 일방적으로 제시했다. 이후 열린 대표자 면담과 간담회, ‘총장과의 대화’에서 조정안을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받아들일 것을 설득했다.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은 조정안을 만드는 과정에 글로벌캠퍼스 유사중복학과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3전공 제도(54학점 취득 시 이중전공이나 부전공을 1전공으로 취급)’와 ‘폐과 후 서울캠퍼스 학과명 졸업장 발급’ 조항은 공정성 논란을 일으켰다. 글로벌캠퍼스 통번역대학 안병현 학생회장(이하 '통번역대 안병현 회장')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개편과 그에 대한 대책, 보상·위로책은 누구도 100% 만족시킬 수 없으며 학교에서 제시한 부분 중 일부가 아직도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했다.

 

양 캠퍼스 학생들의 반대 여론

 

글로벌캠퍼스 통번역대학 학생회는 4월 8일에서 15일까지 구조조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통번역대 학생 581명 중 반대 의견이 359명(61.74%)으로 찬성(27%) 여론을 압도했다.

 

 

서울캠퍼스 총학생회가 4월 5일 하루 동안 진행한 긴급 설문조사에는 1,677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학교 본부가 취하지 말아야 하는 조치’를 묻는 질문에 ‘2개 이상 전공 취득 시 명기할 전공명 선택’이 84.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폐과 조치 후 서울캠퍼스 학과명 졸업장 발급’과 ‘부전공 및 이중전공에 대해 54학점 취득 시 1전공으로 인정(3전공 제도)’ 항목이 각각 82.4%와 79.4%로 뒤를 이었다.

 

학생 다수가 반대하는 구조조정안은 양 캠퍼스 간 갈등을 재점화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서울캠퍼스 학과명 졸업장 발급’ 조항과 관련해 서로의 캠퍼스를 비하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를 두고 서울캠퍼스 이민지 총학생회장(이하 '서울캠 이민지 회장')은 “본질적으로 학교가 학생 의견을 묻지 않고 대책안을 만들었다가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 생각한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통번역대 안병현 회장 역시 “구조조정에 앞서 학생들의 의견이 수렴됐다면 지금과 같이 심각한 갈등은 없었을 것”이라며 학교 측의 일방적인 추진을 비판했다.

 

양 캠퍼스 합동중앙운영위원회 개최했지만 최종 합의 불발

 

지난 4월 15일, 양 캠퍼스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는 학교 측에 구조조정안의 우려 지점을 전달하기 위해 합동 중운위를 개최했다. 10시간이 넘는 회의 끝에 ‘서울캠퍼스 졸업증명서 발급’ 및 ‘54학점 취득 시 전공명 선택’ 조항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합동 요구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글로벌캠퍼스 중운위의 철회 요구로 합의가 번복됐다.

 

통번역대 안병현 회장은 “폐과 대상 학생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환경 보존'을 제외하고는 보상받을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몇몇 학생대표자들과 학생들은 전면 중단 요구 시 학교 측 제시안마저 없어질까 우려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복학과 내에서도 의견이 합치되지 않아 이를 번복하게 됐다고 설명하며 서울캠퍼스 중운위와 통번역대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한편 서울캠 이민지 회장은 “(철회 요구에 대한)입장이 변동될 수밖에 없던 상황으로 보인다. 글로벌캠퍼스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제 책임도 있다”고 전했다.

 

부분 수정된 학칙개정안…대상 학과 변동

4월 19일 학교 측은 학칙개정안을 홈페이지에 공고했다. 공고된 구조조정안에는 기존의 통폐합 대상 학과들이 변동됐다. 유사중복학과로 지정된 글로벌캠퍼스 12개 학과 중 독일어통번역, 스페인어통번역, 이탈리아어통번역, 말레이-인도네시아어통번역학과가 제외됐다. 상기 4개 학과들은 당장 통폐합되지 않고 23년도 신입생 선발을 진행하게 된다. 다음 날 게시된 잔류 학과 학생회장들 명의의 입장문에 따르면, 학과 내 반대 여론이 더 높은 점을 고려해 학과장들과 학생대표자들이 구조조정안 동의서에 응답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중복학과 학생들의 학습권"

 

구조조정 과정에서 통폐합 학과 학생들의 피해는 최소화돼야 한다. 유사중복학과 간 다루는 언어가 같아도 커리큘럼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는만큼, 학교는 기존의 교육환경을 최대한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중복학과 학생들은 "구조조정안에서 ‘교육권 보장’에 대해 고민한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박 총장이 ‘교수들의 정년퇴직’을 언급하며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한 부분에서, 교강사 충원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캠 이민지 회장은 “한국외대의 전임교원 확보율은 74.9%로 전체 대학 평균인 85.5%, 비교 대학(재학생 16,300~22,000명인 서울 사립대 7개교) 평균인 78.7%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교수들의 정년퇴임과 맞물린 학제 개편이 교육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유사중복학과 대표자들은 학교 측에 학습권 보장과 관련해 발생하는 비용 등에 대해 구체적 계획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소수의 인원이 학과에 남을 경우, 다른 학과에 예속시키거나 비슷한 수업을 듣게 해주겠다"는 답변이었다.

 

통번역대 안병현 회장은 “피해에 대한 보상안으로써 등록금 및 졸업학점 완화를 포함해 학생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계속해서 학생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캠 이민지 회장은 이와 관련해 “서울캠퍼스도 같은 외대생으로서 글로벌캠퍼스 중복학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한 해결방안은 소통"

 

지난 11일 진행된 ‘총장과의 대화’에서 박 총장은 “불통에서 벗어나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구조조정이 진행된 중복학과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안을 바라고 있다. 통번역대 안병현 회장은 "구조조정안이 통과된 시점에서, 학생대표자들이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가 더욱 자주 열려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바란다"면서 학교 측이 늦게나마 소통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승진 기자(lsg10227@hufs.ac.kr)

박정준 기자(wjdwns3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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