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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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부탁

세월호 참사 8주기가 돌아왔다. 참사 후 여덟 해가 흘렀지만,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문재인 정권은 2017년 당선 당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업무를 소홀히 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지휘부 8명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또한 같은 해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위해 세월호 기억공간 철수를 요청하면서 7년간 자리를 지켰던 추모 천막이 철거되는 등 사회적 관심이 옅어지고 있다.

 

여기에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질문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귀추는 더욱 불확실해졌다. 따라서 회대알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입장과 요구를 알아보고자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에서 진상규명부서 부서장을 맡고 있는 단원고 2학년 7반 동수 아빠 정성욱입니다.

 

 

정부에 요구했던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 위원회, 4.16 생명안전공원, 목포 세월호 선체 보존 계획 등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생명안전공원은 현재 진행 중에 있고요. 올해 9월에 책공식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세월호 선체는 목포로 옮겨서 거치하기로 확정해서 현재 타당성 검토 진행 중에 있습니다. 환경 평가를 해야 해요. 크게 문제가 없으면 아마 2028년에서 2029년에 거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 위원회(사참위)는 조사를 시작했고, 벌써 3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올해 6월 종료된다고 알고 있어요.

 

조사는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조사가 아주 잘 되고 있다고는 못해요. 세월호 참사 초기 구조 방기 같은 것들을 조사했는데, 대부분 다 대인 조사를 할 수밖에 없어요.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보고서만 나올 것 같아요. 침몰 원인 관련해서도 두 번의 조사가 있었어요. 사참위가 생기기 전에 2017년, 선체 조사 위원회(선조위)라는 게 있었는데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조사하는 거였어요. 짧은 시간 활동했기 때문에 100% 조사할 수 없었고, 세월호가 눕혀서 인양됐잖아요. 그래서 조사할 수 있는 구간이 한정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열린안’과 ‘내인설’이라는 두 가지 다른 주장으로 나왔어요.

 

두 가지 보고서를 살펴보면 내용은 거의 비슷해요. 크게 쟁점이 되는 부분은 ‘솔밸브(솔레노이드 밸브, 주로 유압 회로에 사용되며 유압 펌프에 가해진 힘을 변환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 ‘스테빌라이저(선박의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날개 모양의 장치)’ 이런 부분이 있어요. 내인설에서는 솔밸브를 이야기해요. 즉, 세월호 내의 부품에 문제가 있어서 침몰했다는 거예요. 반면 열린안에서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의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하고요. 그런데 그 충격을 받은 곳이 스테빌라이저가 아닐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뭐가 맞는지 결론을 내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사참위가 이어받아서 조사를 했어요. 지금은 ‘솔밸브 관에서는 문제가 없다’라는 1차 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이게 끝까지 갈 것 같아요. 또, 외력으로 인해 침몰하려면 약 100톤 이상의 힘이 가해져야 해요. 스테빌라이저는 쉽게 생각하면 비행기의 날개인데, 보통 돌아가는 각도가 평균 25도예요. 그런데 세월호는 인양한 후 보니 50.9도 정도 돌아가 있었어요. 그래서 아마 물속에서 어떤 물체와 부딪히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는 것이 지금 사참위가 밝힌 내용이에요. 그리고 또 밝혀진 건 세월호의 항적과 ‘DVR(영상저장장치)’이에요.

 

 

‘DVR’은 CCTV 저장 장치인데, 녹화한 영상을 저장하는 장치예요. 세월호에는 총 64개의 CCTV 채널이 있어요. 그런데 64개 중에서 선내를 비추고 있는, 즉 ‘안’을 비추고 있는 영상은 그나마 살아있지만 갑판과 바다 등 바깥을 비추고 있는 영상들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사참위가 그것을 다시 복원해 봤어요. 그런데 의도적으로 지워졌다는 것이 확인 되었어요.

특히 2014년 4월 15일과 16일 기록은 그런 식으로 지워진 게 96%나 돼요. 또 하나 발견된 것이, DVR이 인양된 날 같이 인양된 것이 두 가지 더 있는데 노트북과 카메라예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법원의 명령에 따라 복원해 보았는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노트북에 있던 것과 똑같은 영상이 DVR에 들어가 있었어요.

 

똑같은 영상이요? 그럴 수가 있나요?

그럴 수 없죠. 그래서 조작이 되었다고 의심하는 거예요. (CCTV 영상이) 노트북에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면 복원 업체가 의심스러운 것 아닌가요?

그것을 정확히 단정할 수가 없어요. 어디에서 건드렸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당시에도 영상을 봤지만 그때는 ‘내 아이의 마지막 행적을 보고 싶다’는 것에 집중했죠. 나중에 시간이 갈수록 어째서 바깥을 찍은 영상이 없는지에 대해 의심하게 됐죠. 거기에서 시작해서 사참위가 조사를 하게 된 거예요.

 

DVR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는데, 아까 제가 항적을 말씀드렸죠? 이 DVR이 제대로 살아만 있다면 세월호가 어떻게 운항되었는지 알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게 없으니 항적도 불확실한 거예요. 세월호의 항적은 두 가지로 발표되었어요. 그런데 원래 항적은 하나여야 하거든요. (정부에서 발표한) 4월 16일의 항적과 그로부터 5일 후의 항적이 달라요. 그 시간 안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죠. 그래서 항적이 조작되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수부와 항적을 관리하는 통합센터가 서로 다른 말을 해요. 해수부는 항적이 저장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지만, 통합센터는 정상적으로 전부 저장이 되었다고 하는 거예요.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죠. 또, 세월호 침몰 당시 지나가던 배가 있었어요. 침몰하는 과정에서 지나가다 무전을 했고, 뛰어내린다면 모두 구조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 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정부에서 발표한 항적과 다르게 생겼어요. 그래서 확실히 조작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사참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 DVR 조작 등 많은 부분에서 성과를 올렸어요. 그러나 핵심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고, 증거를 볼 수 있는 기관이 세 군데 있지만 모두 사참위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에요.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문, 국정원 기밀문서, 해군 기밀문서. 국정원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조금 협조를 했는데 세월호 관련 문서가 67만 건이었어요. ‘세월호’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문서만 67만 건. 그중에 중복되는 것과 군 관련 문서를 빼고 나면 3000건밖에 남지 않아요. 그 중에도 일부밖에 전달받지 못했지만 사참위는 올해 6월에 끝나요. 그래서 답답한 것이 있죠.

 

사참위의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한가요?

연장을 해 봐야,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만약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밝힐 수 있는 부분이 많죠.

 

정부에 세월호 참사 관련 조사와 사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관심과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셨겠어요. 

당연히 느낍니다. 희생자의 가족들로만 충분히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가족들을 다 합쳐봐야 500명쯤 돼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잖아요. 그런데 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고, 연대가 없었다면 아마 더 힘들었을 거예요. 앞선 정부들을 보면 군사정권, 민주정권 이런 식으로 바뀌어왔잖아요. 정권은 계속 바뀌어요. 그런데 청와대만 바뀔 뿐이지 그 밑의 기득권은 그대로예요. 그 사람들은 ‘5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해요. 다음 정권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딱 그 선에 서 있는 거예요. 자기 밥그릇을 지켜야 하니까 절대 협조가 없죠. 그러니까 싸워야 하고, 이게 바뀌지 않는 이상은 참사가 또 일어나도 지금 같은 수준일 거라는 거죠.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고, 그 이후의 시간을 함께 겪은 ‘세월호 세대’로서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세월호 관련 단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대 활동이 필요하다면 그 예시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옛날 이야기를 하자면 8, 90년대에는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상당히 컸어요. 그때는 데모라는 것이 활발했잖아요. 그것을 통해서 시민들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그때는 대자보를 학교에만 붙이는 것이 아니었어요. 길거리에도 붙었어요. 그것을 읽어보고 사람들이 문제를 의식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죠. 학생들이 여러 참사에 관심이 비교적 없어졌어요. 대구 지하철 화재, 삼풍백화점 붕괴 등 수많은 대형 참사가 일어났지만 대학생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어요. 저는 문제의식을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이들이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 차후에 자신들이 나가서 생활해야 할 곳이 바로 그 사회예요. 그런데 대학생들이 사회에 관심이 없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8, 90년대와 지금은 달라요. 지금은 먹고 살기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잖아요.

 

다만, 소외된 계층들을 조금 돌아보고 문제 있는 부분을 지적하는 학생들이 많이 줄어들다 보니까 참사 당시에는 솔직히 대학생들의 손을 빌리고 싶었어요. 연대가 절실히 필요했고. 그런데 고맙게도 많은 대학생들이 함께해 줬죠. ‘지금의 세대를 바꿀 수 있다’, ‘앞으로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많이 주셨죠. 그런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이만큼의 진상 규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년동안 가장 기억에 남은 연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상당히 많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기(안산)에서 팽목까지 도보를 한 적이 있어요. 이때 받았던 도움이 많아서 상당히 기억에 남아요. 또 동거차도라는 곳이 있어요. 세월호가 침몰한 바로 앞의 섬. 거기에 저희가 텐트를 치고 인양 감시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시고 함께해 주셨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세월호가 인양되었을 때. 저는 이 세 가지가 기억에 남아요. 사실 가장 힘든 부분이에요. 도보를 할 때는 14박 15일을 계속 걸어야 했고, 동거차도에서는 불도 피우지 못하는 환경에 식수도 직접 날라야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는데 시민들이 함께해 주셨어요. 그렇게 같이 연대해 주시니까,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거예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대 활동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였나요?

주로 줌(ZOOM)을 이용한 활동이 활성화되었고, 소규모로 저희가 찾아가는 형식이 되었어요. (집합금지 등의 영향으로) 많이 모이지 못하니까, ‘진실버스’와 ‘진실여행’을 시작했어요. 차로 직접 찾아가서 강연하고, 간담회도 했고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거리두기 정책이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세월호 참사 연대 활동은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상황에서는 사실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정부 방침을 따라야 하고. 다만, 야외와 실내 활동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어요. 야외에서 하는 것을 저희는 선호하죠.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으니까요. 지금 아마 야외에서 모일 수 있는 인원이 299명까지라고 알고 있는데, 적지만 대면 형태의 간담회, 토론회 등을 많이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가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해서 갈수록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사참위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어요. 그래서 ‘진실버스’와 ‘진실여행’이라는 것을 만든 거예요.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어서. 저희가 주로 하는 것이 ‘기억 순례길’인데, 안산의 생명안전공원, 목포신항의 세월호, 팽목항 세 군데에 사람들을 모집해서 가요.

 

기사를 볼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세월호 참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희생이라기보다는, 안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고, 왜 구하지 않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고, 좀 더 나은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에 대해 잊지 않겠다고 많이 말씀하시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공부도 해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집단에서 생활도 해야 하잖아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머리로 기억을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마음으로 기억해 달라”고.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마음으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연대를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은 사실 저도 힘들어요. 딱히 조사 결과 등이 명확하게 뭔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다시 조사를 하자, 싸우자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없다 보니까 무엇을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 될 때까지 저희는 맨 앞에서 싸울 거예요.

 

다만, 이 싸움에 저희의 힘만으로는 부족해요. 그래서 연대와 행동을 함께해 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직접 현장을 보고 판단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현장을 보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호예요. 거기에 왔다 간 것과 한 번도 보지 않은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말로만 배우잖아요. 말씀드린 기억 순례길에 대학 새내기들이 상당히 많이 왔어요. 참사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던 친구들이. 현장을 보고 간담회를 하는데, 들어가기 전과 후의 눈빛이 달라져요. 말하는 것도 다르고. 그래서 저는 현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다. 2014년부터 2022년, 대한민국에서 살아오며 참사 후의 시간을 지켜봐온 우리가 그들의 외침에 조금이나마 힘을 실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대해 명확한 정책을 제시하지 않는 새 정부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단원고 2학년 7반 동수 아빠 정성욱 진상규명부서장은 인터뷰 동안 “유가족들만의 힘으로는 싸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쩌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비극을 막기 위해, 나아가 더 나은 미래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4월 16일을 마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글=김언진 기자(uj0092@gmail.com)

취재=김언진, 류주희 기자

사진=김언진, 류주희 기자, 416 가족 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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