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4 (일)

대학알리

여성·젠더

돌에서 피어난 꽃, 석순: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지금 여기에서 계속해서 글쓰기

 

 각 대학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언론들이 학보나 신문, 혹은 교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서울대학교의 ‘대학신문’, 고려대학교의 ‘고대문화’, 서강대학교의 ‘서강학보’, 그리고 성균관대학교의 ‘성대신문’이 그 예시다. 학내언론은 대학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슈들을 종합해 학우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학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대학언론은 학교 외부로 시선을 돌려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현상들을 대학생의 시선에서 파악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대학 내부와 외부를 오가며 대학생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언론의 그 존재 자체와 역할은 중요하다.

 

 이렇듯 교내의 언론단체는 기성세대의 담론과 차별화된 ‘젊은’ 시각으로 바라본 학교와 세상을 활자로 새겨 널리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페미니즘’을 내걸고 활동하는 언론은 그리 흔하지 않다. 보통의 대학언론은 학교의 이름을 따와서 그 이름 뒤에 ‘신문’, ‘교지’, ‘뉴스’, 혹은 ‘타임즈(Times)’등의 단어를 붙인다. 단국대학교의 ‘단대신문’이 그 예이다. ‘00대학교 신문’은 있어도, ‘00대학교 페미니즘(여성주의) 신문’은 드물다.

 

 학내의 공식 언론단체들이 여성주의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이후, 학내언론은 페미니즘과 더불어 소수자 의제를 꾸준히 다루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될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적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독립된 매체에 실을 수 있는 언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성주의 교지, 이것이 문제로다

 

여성주의를 비롯해 소수자 이슈를 전면적으로 다루며 그것을 교지의 형태로 출판하는 단체는 드물다. 보통 ‘00대학교 여성주의 교지’로 불리는 교지는 학내는 물론 사회의 젠더 이슈를 비판하는 글들을 싣는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학회나 이것을 실천하는 학회의 수에 비해서, 페미니즘 교지는 앞서 언급한 대로 극히 드문 편이다. 현재 활동하는 여성주의 교지로는 고려대학교 <석순>, 중앙대학교 <녹지>, 성균관대학교 <정정헌>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대학에서 페미니즘 교지가 만들어졌으나, 2021년 기준으로 활동이 동결된 상태다.

코로나19 이후, 정확히 말하자면 코로나 19 이전부터 학내언론은 자치권 침해 문제와 학우들의 저조한 관심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어오고 있다. 특히나 현재는 페미니즘과 같은 진보적 가치에 대한 *백래시가 심화된 상황이다.

*백래시: 사회, 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로,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따라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약해질 때 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러므로 학내 페미니즘 교지는 ‘00대학교 교지’로서 가지는 문제점과 더불어, ‘페미니즘 교지’로서 가지는 문제를 이중으로 끌어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자신의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어오고 있다.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되는 소수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 쓴 글들로 이루어진 ‘페미니즘 교지’는, 그 존재만으로도 매우 소중하다.

 

석순, 돌에서 피어난 꽃

 

사진: 석순 로고. 출처는 석순 페이스북 공식 홈페이지

 

석순(石筍)은 고려대학교에서 발간하는 여성주의 교지이다. 두 한자 돌 석(石), 싹 순(筍)으로 병합된 이름의 석순은 ‘돌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의미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기어코 피어나는 새싹의 이미지를 상상하게끔한다. 1983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석순은 여성주의는 물론 성폭력, 젠더, 섹슈얼리티, 가족, 몸, 노동, 장애, 퀴어, 학내의 페미니즘, 환경, 그리고 여성운동 등 다양하게 교차하는 문제들을 다루어오고 있다. 

대학언론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여성주의 교지’ 타이틀을 내건 페미니즘 교지들 중 한 곳인 석순을 전 석순 활동가 ‘새길’님과 인터뷰했다. 고려대학교의 페미니즘 언론지로서의 존재, 운영, 현 시국에서의 딜레마, 그리고 언론적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담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자기소개(석순에 어떤 경로로 참여하게 되었는지, 어떤 모멘트를 계기로 석순에 뛰어들게 된 것인지) 먼저 부탁드립니다. 석순에서 언제부터 언제부터, 언제까지, 얼마 간의 활동을 이어왔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새길입니다. 저는 부끄럽지만 대학에 와서야  페미니즘이라는걸 알게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화가 나고 억울한 감정이 있어도 이러한 감정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살아왔거든요.  

대학에 입학 후 새터에서 ‘여성주의’ 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들을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그때부터 여성주의 관련 책 읽고 수업 듣고, 그랬어요. 사실 석순이라는 존재를 그때까지만해도 자세히 알지 못했어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석순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첫째로 제 선배이자 친구인 분이 그 당시에 석순에서 활동했었는데, 그 친구의 권유로 하게된 것과, 두번째로는 제가 대학을 다니면서 성폭력을 피해자로서 겪었던 일이 있었어요. 이것에 대해서는 화가 난다기 보다는 죄책감, 부채의식, 억울함 등이 섞여있었어요. 너무 억울하고 속상한데 이걸 어떻게 풀어내야할 지 모르는 시간들이었어요.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석순에 가입하게 된 거에요. 52체제부터 56체제까지 5학기나 했네요.

(1체제 = 1학기)

 

2. 현재 석순의 편집실은 학생회관 3층 321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학생회관의 한 층에 자리잡았다는 것은 학교의 ‘허가(인증)’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이 공간을 언제부터 점유(점거)해왔는지, 이 공간을 이변 없이 앞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지, 혹은 교내 학생들의 여론이나 교칙(조항)에 의해서 공간성을 위협받은 적은 없는지에 대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사진: ‘석순실’ 내부. 출처는 위와 같음

 

일단 제가 알기로는 석순이 83년에 만들어졌는데 그때부터 321호에서 계속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1체제부터요. 사실 학생회관이 오래된 건물이라, 안전성에 대한 위협이 있었어요. 그래서 학생회관을 보수했을 때, 그래서 저희가 한 번 다른 동방(과방)에 모여있다가, 그 건물에 다른 강의실을 설치하겠다고 하면서 과방이 홍보관이라는 낡은 건물로 밀려나고, 그 홍보관이 철거되면서 다른 건물로 또 이동해야했고…이거에 대해서 학교와 투쟁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건 여성주의에 대한 학교의 억압이라기 보다는, 학생들의 자치권이나 정치활동에 대한 학교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탄압 같아요. 

 

공간을 직접적으로 위협받은 적은 없는데 완전히 안전하다고 느끼는거 같지는 않았어요. 학생회관이라는 건물에는 많은 동아리실이 있고, 그 동아리실 안에 모두가 여성주의나, 사회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만이 모여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석순실의 공간 내부에서는 안전했지만, 이 공간이 언제까지나 안전할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ㅡ어려운 문제네요. 그 동방 자체를 차지하고 있더라도 다른 동아리실과 연결이 되어있다보면, 내가 언제 어디서라도 누군가에 밝혀질 수 있고, 책이 버려질 수도 있고, 혹은 내가 이 동방에서 나오는 것을 누가 보면, ‘뭐야, 쟤 석순해?’ 이런 식으로 보는 눈빛도 받으셨을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코로나 시국이 심각해지고 학교를 나가지 않은 후로 여성혐오와 백래시가 심해졌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 당시에 제가 석순 방에 들어가려는데 때마침 학생회관 복도에 사람이 많은 거에요. 그때 제가 석순실 비밀번호를 누르는게, 조금 무서웠던거죠. 누군가가 나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낙인찍히지 않을까, 라는 공포가 항상 존재했던 것 같아요.

 

ㅡ비밀번호를 누를 때 보는 눈이 있잖아요.

 

쟤 석순인가? 하는 눈빛.

 

석순, 그리고 고려대학교

 

3. 석순은 2005년 <고대문화>와 함께 학내의 다양한 언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자치언론협의회(이하 자언협)를 만들었습니다. 이 두 언론지 외에도 <The HOANS>, <퀴어 가이드>, <영화집단 AVI>, 그리고 〈거의 격월간 몰라도 되는데〉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독립 언론’ 들이 서로 공명하는 지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지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사실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웠어요. 제가 석순 활동을 하면서 자언협에 참가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언협 회의가 열려서 교지대같은 거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근데 이게 다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각 단체의 문제의식이라는게 모두 다르잖아요. 그러다 보니 특별한 연대/유대감은 적었어요. 다만 그래도 함께 글을 쓰고 교지를 편집하는 사람으로서의 약한 연대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ㅡ그런 점이 조금 아쉬웠던거군요. 다른 독립언론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공유하는 그런 시간이 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시는건가요.

 

네, 석순만이 교지대를 모두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여러 언론지들이 퍼센테이지로 분배받는 방식이거든요. 그런데 여성의 달인 3월이 되면, 마침 그 달이 개강 후 교지대를 납부하는 시기거든요. 그래서 항상 ‘우리가 납부하는 교지대가 페미들한테 들어간다!’ 라는 말이 학우들 사이에서 나와요. 그래서 교지대를 내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있고요. 교지대를 학우들이 납부하지 않으면 석순뿐만이 아니라 다른 언론지들도 타격을 받아요.

 

이런 상황에서 교지를 제작하는 동아리들이 다같이 모여 교지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한다던지, 혹은 교지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목소리를 낸다던지, 이런 활동을 하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ㅡ시너지 효과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라는 말이네요.

 

네.

 

4. 자치언론협의회에 따르면, ‘회칙에 명시된 조건을 충족하는 학내 언론이라면 자언협에 가입하고, 자치언론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우들이 납부하는 ‘교지대’의 15%를 자치언론기금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석순은 고려대학교의 자체적인 지원을 받는 공식적인 언론임이 증명됩니다. 공식적인 지원을 받지만, 동시에 자언협 소속으로 독립 언론을 표방하고 있는 것인데, 이 둘 사이의 균형/긴장에서 어떠한 피로를 느낀 경험이 있으신지? 

 

사실 저 결산 내역을 제가 작성한겁니다. (웃음) 중간적 위치에서 받은 정신적 피로에 대해서는…저희 석순은 독립언론이기 때문에 전학대회에 참여해서 결산안 자체를 공개할 의무는 없어요. 근데 하긴 하거든요. (이 점과 관련해서) 안타까웠던 점은, 항상 석순이 욕을 먹는 이유들 중 하나가. “쟤네 교지대로 술 마시고 카페간다”라는 말이에요. 전학대회에서 결산안을 투명하게 공개하는데, 어떻게 술을 마시나요. 이런 식의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답답한거죠. 전학대회 와서 한 번만 발표를 들어주면, 아니면 교지에 수록된 결산안을 한 번이라도 읽어준다면 그런 오해가 없었을텐데. 왜 우리에게 이러한 낙인을 씌우는걸까, 라는 피로였어요.

 

ㅡ계속해서 ‘해명’을 하셨어야 했군요.

 

네, 이러한 비난을 직면했을 때 오는 심리적인 피로감이 컸어요. 요즘은 에타에 잘 들어가지 않아 잘 모르지만, 예전에는 계속 이러한 글들을 봤던거같아요.

 

ㅡ주기적으로 게시되죠.

 

네, 항상 똑같아요.

 

ㅡ우리가 납부한 등록금으로 놀고 마신다, 라는 비난들.

 

학교에서 보호적인 울타리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너무 큰 요구인가요? (웃음) (이러한 원색적 비난으로부터의) 울타리를 학교에서 제공해주었다면, 석순이 가지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석순과 여성: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기

 

5. 석순은 독자들과 어떤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가요?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통해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또한, 독자뿐만이 아니라 석순을 둘러싼 교내의 언론/반응이 어떠한지도 궁금합니다. 고려대학교(대학교) 측에서 석순을 대하는 방식 또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우선 독자들과의 소통을 이어나가는 방법들 중 가장 큰 것은 독자모임이에요. 책을 발간하면 2주쯤 뒤에 독자모임을 열어요. 글을 같이 읽고 이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자리에요. 코로나 이전에는 뒷풀이도 했었는데, 요즘은 줌(ZOOM)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사진: 석순 독자모임 포스터. 출처는 위와 같음


 

줌으로 바뀌어서 안타까운건 있어요. 독자모임은 단순히 감상을 나누고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위로받고 연대받는 느낌을 주는 자리거든요. 저는 5번의 독자모임에 참여를 했어요. 처음에 썼었던 글이 제가 겪은 성폭력에 대한 글이었어요. 근데 저의 그 글을 읽은 독자모임 친구들이 다 우는 거에요. 그때서야 아, 내가 정말 속상했구나. 아팠구나를 깨달았어요. 그 전까지는 스스로 ‘너 왜 속상해?/니가 잘못한게 있을거야’ 식의 억압적인 생각을 했었거든요.

 

석순 내부 사람들이 저에게 주는 위로도 크지만, 독자들이 제 글을 읽고 저한테 감상을 말해주는게 굉장히, 뭐랄까 낯선 사람이 주는 위로가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이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저의 첫 글에 대한 애프터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썼어요, 결국. ‘안 괜찮았고, 너무 힘들었다’ 라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쏟아냈어요. 동시에 ‘근데 이제는 괜찮아진 것 같다’ 라고도 말했어요. 이 독자모임에서 이 애프터 글에 관해서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써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위로 받았다’, 라고 말하신거에요. 다행이었고, 너무나도 큰 위로를 받았어요.

 

에브리타임과 고파스는 유명하죠. 옛날에는 익명으로 반박하는 댓글을 작성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냥 무시하고는 있어요. 봤을 때 솔직히 마음이 좋지는 않아요. 내가 열심히 하고 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활동인데 누군가에게는 그냥 놀려고, 술마시려는, 그러니까 ‘돈 삥땅 쳐서 술 마시려는’ 활동이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한 번만이라도 우리의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있었죠.

 

무관심에서 오는 혐오라고 생각해요. 한 줄도 읽어보지 않은 채로 비난을 하는 것이죠.  씁쓸하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제 주변에는 저의 활동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학교 측에서는 저희 석순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관심이 적은 것 같아요.

 

ㅡ학생 자치권에 대한 무관심, 무지라할까요.

 

제가 17학년도에 입학했어요. 옛날의 대학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자신의 사상을 구축해나가는 그러한 장이었다고 교수님들한테서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취업을 위한 공장, 기계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보니까 대학에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고, 자치권을 얻으려는 노력이 어려워진거같아요. 학교가 우리에게 귀를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그때의 사건처럼 석순과 관련해서도, 석순이 사이버불링을 당했을 때 학교 측에서 보호를 해준다던가, 그런 것들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6. 2020년에 발간된 54호와, 2021년에 발간된 55호에 참여하신 작가님들의 이름이 한 분을 제외하고 모두 다릅니다. 원래부터 잦은 인원 교체가 있어왔는지, 혹은 어떤 문제/사정으로 활동을 1년을 채 넘기지 않는지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인원 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지 매 호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이라고도 한다고 들었는데요, 필명으로서의 익명 속에서도 계속해서 이름을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말 별 이유가 없고 (웃음), 저는 지금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새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여성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저의 이름에 담으려고 계속 쓰고 있네요. 석순 52호때는 토토였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 <창가의 토토>에서 따와서 이름을 지은거거든요. 그 뒤 53호에는 새길이라는 이름을 썼고요.

 

필명에 많은 의미를 담기도 하고, 안 담기도 해요. 필명에 자신이 원하는 글의 방향이나 나의 정체성을 담는 친구도 있고, 52호때의 저처럼 그냥 좋아하는 이름을 쓰기도 하고요. 인원 교체에 관해서는, 어떨 때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가 어떨 때는 훅 빠져나가요. 혹은 인원이 유지되는 와중에 단 2명 만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네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에요.

 

지금 20대는 점점 힘들어지잖아요. 취업 문제나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죠. 석순도 56때 보면 저도 취업하고, 어떤 친구는 인턴가고 교환학생하고. 이러한 준비들을 하니까 많이 못 남는 거에요. 점점 사람들은 할 게 많아지는 세상에서, 여성주의라는 것을 잡고 가는 것이 참 힘든 것같아요.

 

ㅡ그렇죠, 글을 쓰면서,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왜 이렇게 괴로운 글을 쓰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기 마련인 것같습니다.

 

네, 특히 코로나 때문에 더 그런 것도 있어요. 제가 56체제 석순의 매니저였을 때, 교지를 발간하고 소회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분이, 글을 쓰면서 ‘너무 외로웠다’, 고 하더라고요. 이 말을 듣고 정말 미안했어요. 

 

제가 처음 석순에 가입했을 당시에는 자주 만날 수 있었거든요. 사실 이러한 일상적인 만남에서 주는 연대가 있어야 사상으로서의 연대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때에는 어려웠던거죠. 이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점점 고립되고. 그 안에서 나의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지금 세상에서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7. 2020년 7월 12일 ‘성착취 장려하는 사법부 규탄 집회’, 그리고 2021년 3월 12일 ‘여성 연대 릴레이’ 등 석순은 교내 뿐만이 아니라 교외 사회의 여성주의 운동에 참여해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석순은, 고려대학교의 여성주의 언론지에만 국한되지 않고 학교 밖 사회에서도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것인지 여쭙니다.

 

*교지 발간과 시위 참여 외에 석순이 학기/방학 중에 진행하는 활동이 있다면 궁금합니다. 

 

사진: 왼쪽부터 “성착취 장려하는 사법부 규탄 집회”, “연대의 릴레이” 포스터. 출처는 위와 같음

 

일단, 교내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건 맞습니다.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저는 학교 안에서만 사람들을 만난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석순이 외부 사회에 대해서 많이 쓴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저는 학교 안에 갇힌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활동 범위를, 나 자신을) 펼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답을 여성주의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석순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학교 안에서만 그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팽창해나가야한다고 (저와 석순은) 생각했어요. 저는 그게 옳으니까,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안희정, 박원순, 손정우 등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도 죽 썼잖아요. 우리가 이 글들을 왜 쓰려고 하는지 계속 생각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해야하는 일이니까 한다고 생각했어요. 교내외를 가리지 않으면서 어떤 문제를 마주한 뒤,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우리는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니까 글을 쓰자라는 결론이 나왔고요.

 

ㅡ계속해서 팽창하고 싶다는.

 

운동성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아까 일상적 연대를 말한 것과 연결이 되는데, 제가 사법부 규탄 집회를 갔었을 때, 물론 여성주의적 운동을 하기 위해 간 것이 맞긴 하다만, 동시에 친한 친구랑 한 번 가보자, 하고 간 것도 없지 않아 있거든요. 예전에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받고 *집회가 열렸잖아요. 그때 저랑 친구들이랑 ‘석순’으로서 참여한다기 보단, ‘어, 좋은 일이다. 같이 가자’. 그렇게 해서 간 것도 있거든요.

 

사진: 2019년 4월 11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공행동> 집회. 출처는 위와 같음

 

 ㅡ같은 여성주의적 사고관을 공유하는,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단지 모이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운동적인 목적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 있죠.

 

8. 여성주의 내부에서도 다양한 노선들이 존재합니다. 페미니스트 10명이 모이면 10개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순은 내부적으로 상통한 하나의 의견에 수렴이 되는지, 혹은 서로 다른 목소리(정치적 노선)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드립니다.

 

일단 석순은 ‘장애-여성-노동-퀴어-섹슈얼리티-계급-인종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아리’라는 것을 소개글에 써놓아요. 결국 제가 생각했을때, 석순의 페미니즘은 ‘팽창’ 같아요.. 제가 예전에 (석순 54호에) N번방 사건에 대해 아카이빙 했을 때, 마지막 문장으로,

 

 

“우리는 거대해 보이는 강간 문화의 벽을 두드릴 것이다. 우리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그 벽은 반드시 깨질 테니까.”

 

 

를 썼어요. 근데 이 벽을  두드리려면, 3-4명으로는 안 되죠.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이걸 교차성 페미니즘이라고 불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연대의 폭을 넓혀나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목소리들이) 다를 수는 있는데, 이것들은 결국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속에서 ‘페미니즘’, 즉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과 성착취와 여성을 사고 파는 문화에 맞서 싸운다는 큰 줄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폭력들과) 싸울 때 연대함에 있어 자그만한 차이들은 큰 방해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팽창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9. 석순이 타 언론(교지)들과 차별화된 요소가 있다면 궁금합니다. 조직의 특수한 강령이라던지, 운영 방침에 대한 것들에 대해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다른 여성주의 교지를 해 본적이 있지 않아 잘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석순의 가장 특별한 지점은 ‘고려대학교’ 학내에서의 ‘여성주의’ 교지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논의를 많이 한다는 것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코로나 전 대면으로 글에 대한 피드백을 할 때에는, 정말 오랜 시간동안 했어요. 마감 칠 때에는 밤새도록 했죠. 사실 석순이 아주 큰 동아리는 아니잖아요. 작고, 내규가 느슨한 동아리라고 생각해요. 딱딱한 조항이나 규칙이 완벽하게 있지는 않았어요. 덜 체계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서 오는 여유랄까요. 일상적인 친근함이죠.

 

단순히 운동 조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친숙하고, …’가족같다’ 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에게는 석순이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주었어요.

 

그러니까, 석순에서 친밀한 상대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 지 알고 나는 그것을 신뢰할 수 있잖아요. 적어도 이 사람이 나를 배제하지 않는 말을 하지 않을거고, 설사 그런 말을 했더라도 내가 그것을 말했을 때(지적했을 때) 수정해줄 수 있다는 것을 믿으니까.

 

ㅡ신뢰.

 

그래요. 그래서 솔직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웃고, 울고, 노래부르고.

 

ㅡ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든 것 같기도.

 

피드백 할 때에도, 정말 사소한 문장 하나에 30분 넘게 이야기를 할 때가 있잖아요. 근데 줌과 온라인으로 했을 때에는 그게 잘 안되었어요. 피로도나 집중력 문제도 있고. 직접 만나서 말로 전하는 것에서 글의 뉘앙스라던지에 대해서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데. 글로서 전하는 피드백으로는 그것이 힘들었어요. 이건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큰 문제죠.

 

10. 석순은 작가 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여성적(정치적)인 투쟁을 열거함과 동시에, 54호에서 ‘N번방 사건 아카이브’를, 55호에서 ‘특집글: 분노의 불꽃 이후 남은 것은 무엇인가’에서 사회의 젠더 이슈를 아카이빙해왔습니다. 이렇듯 석순은 개인과 사회의 문제들을 동시에 다루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석순은 앞으로 여성주의 교지로서 어떤 언론적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석순이 지향하는 언론적 및 사회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선 소박한 목표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여성주의를 알고 되게 힘들었거든요. 내가 겪은 일이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힘든데, 내가 누군가에게 가해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여성주의를 통해 알게 되잖아요. 저는 이 경험이 힘들었어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일거에요. 여성주의라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죠.

 

지금은 여성이나 소수자가 힘든 사회잖아요. 그런 세상에서 석순을 읽으시면 위로를 받으시지 않을까. 그러면 너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쓴 글이 위로를 드릴 수 있으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이에요.

보다 공적인 목표로는, 우리의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을 쓰고 말을 함으로써 그런 바램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글은 강력할 수 있잖아요. 저는 글이 가지는 힘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의 글이, 석순의 글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ㅡ글을 쓰는 사람들이 항상 가지는 소망 같습니다. 나의 글이 사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엄청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죠. 옛날 선배들의 글을 보면 굉장히 많은 위로를 받잖아요. 그런 곳에서 나오는 위로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석순의 글이 세상에 ‘타격’을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신건가요.

 

타격이라는 말이 적확한 듯 합니다.

 

ㅡ충분히 타격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1. 석순이 현재(지금-여기)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요?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상황이 어려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인원 감소, 의사소통의 어려움, 재정…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번째로는 학생들이 만드는 언론지(교지)로서의 어려움. 두 번째로는 여성주의 교지로서 가지는 어려움이 특별하게 있습니다. 

 

첫 번째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온라인 만남이 주류가 되면서 일상이 약해지고 연대감이 약해진다는 느낌이에요.  앞서 말했듯이, ‘글을 쓰면서 외로웠다’ 라는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아팠거든요. 이것은 석순 뿐만이 아니라 비단 다른 모든 교지들도 어려워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어쨌든 글은 누군가에게 읽혀져야 하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잖아요.  

 

여성의 날에 대자보를 붙이면, 물론 많은 비난을 받지만, 그래도 그 중에도 읽고 공감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저희가 2019년 3월 8일에 페미니스트로서 겪는 고충에 관한 대자보*를 3장 정도 붙였어요. 그래서 종이 한 장은 아예 빈 칸으로 만들어서, 대자보를 보시는 분들이 포스트잇에 써서 (자신의 이야기를) 붙일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들이 붙었어요. 그런 것들에서 주는 용기와 연대감이 지금으로서는 온라인이 주가 되고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많이 약화된 것 같습니다.

 

사진:  “우리는 요구한다”, 2019년 3월 8일 대자보. 출처는 위와 같음

 

여성주의 교지로서 가지는 어려움은 백래시의 영향이랄까요. 제가 여성단체에서 (페미니즘 관련)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좀 심하다라고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제가 말하는 것이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이 주가 되고 사람들 간의 만남이 적어지다보니까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 같아요.

 

ㅡ공격성이랄까요.

 

여성주의 교지로서의 어려움에는 여성주의 자체에 대한 타격이 가장 커요. 이번에 안산 선수에 대한 사이버불링도. 외국에서는 ‘Online Abuse’라는 표현을 했잖아요. 이것은 특정 인물만에 대한 공격인 것이 아니에요. 그 공격대상과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반페미니즘적 사회에서 (공유적 특성을 가진) 나라는 존재가 그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제 졸업을 하고 석순을 하지 않지만, 이번에 57체제 하시는 분들이, 이런 점에서 걱정되기도 하고, 힘을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석순이 독자들에게 주는 연대와, 독자들이 석순에게 주는 용기가 있잖아요. 근데 이것이 잘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석순이 세상에 가하는 ‘타격’, 그리고 ‘사랑’

 

사진: 고려대학교 건물에 비치된 석순 교지들. 출처는 위와 같음

사진: 석순 53호와 54호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지를 계속해서 발간해야 하는 소명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성주의적 글쓰기라는 힘들고 지치는 일에 전념하게 되는 원동력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석순 활동을 하면서 어떤 점을 보고 배우고 깨달았는지에 대해서도 답변 부탁드립니다.

 

* 석순 55호의 여는 글 중 일부 발췌:

 

 

“가끔, 세상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 그럼에도 제게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평이 열려갑니다. … 그 새로운 길 위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처음에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노력한 것은 감정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죄책감, 분노, 슬픔, 억울함이 너무 컸어요. 이걸 어떻게 내 안에서 소화시켜야할 지 몰랐어요. 많이 울었어요. 엉킨 감정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할까. 근데 석순에 들어가고나서, 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다들 자신 안에서 엉킨 감정의 실타래들을 품고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 모이게 된거죠. 덜 외로워졌어요. 왜 나만 이럴까? 왜 세상을 이렇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외로웠는데, 석순에서 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여성주의적 글쓰기는 참 힘든 것 같아요. 일기 쓰는 것도 사실 힘들잖아요. 내 감정을 직시해야하고 이 감정들을 풀어내야하고. 근데 석순에서 글을 쓰는 것은, 사회의 문제를 발견해서 그 부분에 대해 풀어쓰는 것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첫 번째로, 저는 옳으니까, 해야하니까, 라는 생각으로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해왔어요. 이게 원동력이였어요. ‘해야하니까’.

 

두 번째로, 저에게 글쓰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석순 편집실에,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페미니즘’ 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어요. 저는 그게 정말 맞았어요. 페미니즘을 알지 못했으면 내 인생이 과연 편했을까?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고, 나는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 사회는 평등하다고 여기면? 말하고 나니까 정말 공감 안 되는데, (웃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면 어땠을까라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근데 예전처럼 살았으면 전혀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여성주의적 운동을 하면서, 많은 효능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글을 쓰면서 친구들끼리 공유하면서 이 문장은 좋고, 이 문장에서 위로를 받았고,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에게 오는 만족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 석순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뭔가가 바뀌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문구가,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슬퍼하지 마라. 네가 바뀌었다.” 

 

 

이 말처럼, 저는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정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정말 많이 바뀌었고. 제 친구들이 바뀌었어요. 만족할 수 없는 속도, 그러니까 정말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내고 있잖아요. 뭉쳐서 연대하고, 발전하고 있잖아요. 학문과 사회는 계속 진보하고 그 진보의 길은 결국에는 사람을 위한 길이라고, 한 교수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저는 사회가 그렇게 바뀔 것이라고 믿어요.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그 예시에요. 어쨌든 우리는 action을 취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요즘 새롭게 된 가진 인생관인데. 저는 사실 인간에 대해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거든요. (웃음) 저에게 상처 준 사람이 싫고,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싫고, 변명하는 사람이 싫고, 그리고 정부도, 사회도 싫고. 싫은게 엄청 많았는데, 근데, 저는 사람을 너무 사랑하더라고요. 우주에서 보면 정말 작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 모여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고, 이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제 마지막 글에, 여기까지 함께 해오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을 썼는데, 저는 그 사람들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힘들었을 때, 들어주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줬던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제가 스물 넷까지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그 사람들에게 좋은 세상에서 함께 가고 싶고 선물해주고도 싶어요. 이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좋은 세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석순을 하면서, 사람이 참 좋아졌어요. 물론, 여전히 싫은 사람은 있지만. (웃음). 없을 수 없잖아요. 그래도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좋은 세상이 왔으면 해요.

 

ㅡ폐허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고 느끼시는거군요.

 

네, 약간, 아스팔트에 자란 민들레처럼요. 찡하잖아요.

 

저는 옛날에, 분노라는 감정을 부정적으로 인식했어요. 그래서 침착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제 글은 분노로 날 것 그대로인데, 비교되니까 더 그랬어요. 하지만 이게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내 안에서 무언가가 타올라야 불꽃, 원동력이되잖아요. 이제는 제 안의 분노를 수용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시민단체에서) 모니터링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악의가 눈에 보일 때가 있어요. 그 순수한 악의를 보는 것이 힘든거죠. 예전이라면 화가 났으면 ‘침착해, 억눌러’ 였다면 그러나 이제는 그래 한 번 타봐라, 이 분노로 무언가를 해보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이 있어요.

 

 

 “너희는 내가 씨앗인지 모르고 나를 묻었다.” 

 

 

저는 제가 너무 뜨거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는 안 오고, 땅은 쩍쩍 갈라지고, 모래 바람은 엄청 불어오고. 근데 저뿐만 아니라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혼자 있는 것 같고. 그러나 그게 아니었어요. 땅을 마르지 않도록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무엇인가가 바뀌고 있어요. 우리는 끝까지 해낼거라고 저는 믿어요.

 

석순 예전 글들을 보면 정말 똑같은 말들을 하고 있어요. 여성의 신체에 대한 억압을 멈추라는 말을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그리고 계속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어요. 이런걸 보면 정말 안 바뀐다 싶다가도, 그래도 바뀌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고, 누군가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더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가 같이 있다는 감각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이죠.

 

ㅡ연결의 감각, 이것이 살게하는 것이죠. 분노로 나 자신을 망치지 않도록 해주는.

 

마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글쓰기

 

 척박한 환경에서도 꽃이 핀다. 이것은 상투적인 문장이지만, 이 말은 돌에서 피어나는 새싹, 석순의 나아감을 묘사하는 적확한 문장일 것이다. 글로써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가에 대한 회의와 불안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목소리를 낸다면 혐오와 폭력의 단단한 철갑을 서서히 녹일 수 있다. 또한 인터뷰 말미에 언급된 “연결의 감각”, 즉 나와 연대하는 자들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운동에 큰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학내의 페미니즘 교지는 그 존재만으로 귀중한 것이 아닐까. 학내외의 짙은 폭력과 혐오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담은 글들은 강하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의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읽고 힘을 얻는 것은, 외롭고 힘든 대학생활에서의 단비와도 같을 것이다. 글을 쓰는 페미니스트 대학생들이 모두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기를 바란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