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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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호소가 사라지는 이유

공주대 간호학과 교수 갑질 사건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이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 무력함은 자연히 부당함에 대한 침묵으로 이어지고, 강자와 약자, 갑과 을이 구분된다. 이러한 상황을 빗대 ‘갑질’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갑의 ‘권리’로 취급됐던 만행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갑을 관계에 대한 문제가 등장하고 있으며, 을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대학 역시 스승과 제자 사이가 갑을 관계로 나타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교수님, 꽃이 참 예쁘게 피었습니다.

지난 학기 공주대학교는 거의 모든 강의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각 강의는 교수 재량에 따라 대부분 절대평가로 성적이 산정되었고, 학생들의 전체적인 성적 폭은 상승했다.  그러나 특정 과목에 대해 점수를 낮게 받았다는 학생들의 글이 에브리타임 (학내 익명 커뮤니티)에 다수 작성됐다. 해당 과목은 10점 만점의 ‘수업 활동’ 평가 항목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점수 산정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이 의문을 갖게 된 이유는 두가지다. 우선 중간 및 기말고사와 과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정작 수업 활동 점수는 0~2점을 받는데 그쳤다는 점이다. 또한 해당 수업이 실시간 온라인 수업이 아닌 사전 녹화 강의를 시청하는 방식이므로, 교수가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직접 평가할 수 없는 형태임에도 ‘수업 활동’ 항목을 평가에 넣은 것이다. 더구나 ‘수업 활동’에 대한 평가 기준은 사전에 학생들에게 명확히 공지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학생 (이하 X양)이 에브리타임에서 이 문제에 대해 학생들의 제보를 받았다. 그 결과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는데, 과제 제출 시 ‘꽃이 참 예쁘게 피었네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으니 교수님께서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등의 인사치레성 코멘트를 넣은 학생들이 ‘수업 활동’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대목이다. 수업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산정된 점수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를 바탕으로 X양은 간호학과 대표를 통해 학과 단체 채팅방에 ‘수업 평가 방식에 대한 부당함’에 대한 익명 투표를 진행했고, 투표 결과를 근거로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담당 교수는 실명 투표로 전환해 다시 투표할 것을 요구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부당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해당 교수는 평가방식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이 커뮤니티에 올린 강의평가를 ‘자신에 대한 음해’라 칭하며 명예훼손을 적용해 사이버 수사를 의뢰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이후 성적 정정 기간 마지막 날, 실명 투표에 참여했던 몇몇 학생들은 과제 평가 항목에서 눈에 띄게 떨어진 성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적 하락의 폭은 A+에서 B+. B+에서 C0등으로 다양했다. 그러나 교수는 ‘논란이 있는 수업 활동 항목을 제외하고 다시 상대평가를 진행한 것’ 이라며 ‘이의가 있을 시 개인적으로 신청 바란다, 100% 성적 저하 될 가능성’ 이라는 말을 덧붙였고, 학점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학생들은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해당 교수의 성적 감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비대면 수업으로 과목마다 종강일이 달라지고 성적 발표일도 제각각이 되면서 성적 정정 기간이 촉박해졌다. 따라서 기존과 달리 1학기  정정 기간이 계절학기 과목 정정기간에 포함되어 연장되었다. 이 기간에 교수는 아무런 공지 없이 학생들의 성적을 한 차례 더 감점했다. 성적이 하락한 학생들은 대부분 실명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평가 기준을 납득할 수 없다’ 에 투표한 이들이었다.

 

당초 간호학과 학생들은 사안이 커지지 않도록 학과 내에서 문제가 해결되길 원했다. 그러나 진전이 없자, 학생들의 제보내용과 자료를 총학생회에 전달하며 학교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학교 본부에서 이 사안에 대한 내부조사를 진행 중이다.

 

을이 생존하는 방식

권력을 가진 갑과, 그 권력에 휘둘리게 되는 을. 갑의 언어를 따르는 것은 을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다. 학생들에게는 학점도 중요하지만, 학점만큼 학과 교수의 눈밖에 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두 차례나 반복된 보복성 성적 하향은 학생들에게 낮은 학점 이상의 공포를 주었다.  해당 교수는 X양을 주동자라 칭하며 ‘나머지는 주동자에게 문의바람’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성적 하락의 원인이 X양에게 있다는 듯한 책임 회피 및 전가의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 학생들은 문제 제기를 한 X양을 원망하기도 했다. 교수의 갑질이 어느 순간 ‘을과 을의 싸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결국 X양은 간호학과 학우들을 대상으로 사과문을 작성해야 했다.

 

예술대, 음대, 체대 등 예체능을 비롯해 전공 특성상 취업과 직결되는 학과들은 교수의 영향력이 강하다. 교수가 휘두르는 권력은 하나의 관습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학생들은 그런 교수들의 행동을 갑질로 규정하지 못했다. 문제를 타파하는 대신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계가 깨지지 못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 교수들이 지닌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막강하기 때문이다. 학연과 지연 등 교수 개인의 인맥이 다방면에서 깊게 작동하면 학생은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간호학과의 경우, 교수의 추천서가 대학병원 취업에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양식을 작성해 교수에게 제출, 서명을 받는 방식이다. 인터넷에 ‘간호학과 추천서’를 검색해보면, 과제나 레포트를 사고파는 사이트에서 내용이 미리 작성된 추천서 양식을 판매하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추천서는 주로 학년별 지도교수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재학 중에 교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면 추천서에 서명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반대로 교수가 부당하고 무리한 요구를 해도, 이를 들어주는 것이 자신에게 하나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기에 학생들은 불가피하게 따를 수밖에 없다.

 

추천서 외에도 교수의 눈치를 살펴야 할 필요는 또 있다. 자대 병원을 지원할 때는 교수와 자대 병원 직원들의 인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면접관이 교수와 직속 선후배 관계라거나, 병원 관계자와 연이 닿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교수에게 크든 작든 문제제기를 하게 되면, 그 문제가 해결될 확률보다 교수의 눈 밖에 나 길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부분의 학생이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이유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부당함을 고발할 때 마주해야 하는 부담은 교수의 영향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과 이미지 실추를 염려해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지 말자는 여론이 내부에서 일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참지 그러냐,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 와 같은 말들은 고발자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앞서 얘기한 공주대학교 간호학과 내에서도 해당 사건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아 제보를 망설이던 학생들이 있었다. 또한 간호학과처럼 재학 중 실습을 나가야 하는 과들은 전체적인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고 학년별로 시간표도 이미 짜여진 경우가 많다. 4년 내내 같은 사람들과 수업을 듣는데, 그 안에서 안 좋은 이미지로 낙인 찍히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학생들의 문제의식이다. 앞서 말했듯, 교수의 갑질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습처럼 굳어져 학생들에게 학습되었다. ‘늘상 있었던 일’ 이라는 사실은 ‘보편적이다’ 라는 말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졌다. 학생들은 입학 후 선후배들과 ‘00 교수님은 이렇게 해야 점수가 잘 나온다’, 따위의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을 공유한다. 이는 하나의 정보로 분류되며, 미리 캐치하지 못함은 개인의 게으름이라고 인식된다. 누군가 부당함을 느끼고 학과 내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봐도, ‘원래 그런 거지’ 라는 무기력한 대답에 침묵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용인하는 상황을 홀로 받아들이지 못함에 ‘내가 이상한가?’ 혹은 ‘적응을 못하나?’ 라는 생각까지 이르기도 한다. 인사치레성 코멘트를 덧붙이는 것이 학점에 가산 요소가 되는 등의 부적절한 평가 방식은, 시간이 쌓여 학생들에게 ‘요령’ 정도로 치부되었다. 이것들이 암묵적으로 당연시되는 집단 안에 몸담고 있으니, 어느새 무감각해지고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게 된다.

 

비단 간호학과 뿐이 아니다. 타 대학에서도 예술대, 미대, 음대 등을 비롯한 예체능 과에서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부당함을 고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무사히 졸업하고 싶어서, 무용단에 들어가고 싶어서, 졸업 후 취업에 교수님의 인맥이 필요해서, 업계가 너무 작아 소문이 날까 두려워서 등등. 예체능 전공 특성상 실기 시험이 많은데, 이에 대한 평가 기준이 100% 주관적인 교수 재량이기 때문에 교수의 말은 곧 법처럼 통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꼭 갑질이 아니더라도, 교수를 향한 이의제기나 반대되는 의견을 표출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시스템 체계화의 필요성

갑질은 어떤 형태로도 존재해서는 안 되며, 권력을 증명하거나 과시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더욱 부적절하다. 그럼에도 갑질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갑질 근절을 위해 학과 혹은 학교 내에서 빠르게 진상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공주대 간호학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공론화를 위해 목소리를 모으는 과정에서 다수의 학생이 감점을 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일을 막으려면 학교가 보다 체계적으로 대처해 학생들의 인권과 학습권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의 확실한 대응 체계는 갑질 방지를 넘어, 부당함을 겪고도 고발을 망설이는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당신이 느끼는 부당함이 예민함이 아니라는 것을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증명해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부에서 ‘갑질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나, 익명으로 신고할 경우 사건의 자세한 진상 파악과 적극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부당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학생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해결할 수 있는 학내 갑질 신고센터 등의 기구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당신들의 노력도, 교수가 내리는 부당한 평가도 당연하지 않다. 권리와 권력을 혼동하면 안 된다. 권력의 남용엔 당위성이 부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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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연 기자

구석진 곳을 왜곡 없이 비추고, 가려진 세상을 섬세하게 묘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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