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3 (목)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다같이 돌자, 정총 한 바퀴

마블

한국외대에는 신설 된 L&D학부를 포함해 총 12개의 단과대학·독립학부(이하 단대)가 있다. 외대가 아무리 좁다지만, 단대에 따라 학생회칙부터 시작해 놀이 문화까지 다른 점이 속속 보인다. 다른 단대 친구와 얘기하다가 “어? 그런 게 있어?” 하는 때가 이런 경우다. 이런 점을 발견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는 바로 다른 단대의 정기 총회 이야기 속에 있다.

우리 단대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다른 곳에서는 문제가 되고, 우리 단대에서는 오랫동안의 골칫거리 문제가 다른 곳에서는 처음부터 없었던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 있다. 바로 ‘정기 총회’ 그 자체에 관한 내용이다. “정기 총회 가도 딱히 바뀌는 게 없던데?”, “정기 총회 가봤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중간에 나왔어” 하는 얘기가 언제나 나온다. 외대의 마블을 한 바퀴 돌면서 다른 단대의 논의 안건에는 무엇이 있는지 구경해보자. 그리고 지금까지는 말하지 못했던 “자꾸 이러면 우리 정기 총회 가기 싫어져”에 대해 솔직히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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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상경대학은 상경대학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정기총회를 유예 혹은 보류할 수 있습니다.

1. 내 목소리 내라고 해서 왔는데...

뭘 얘기하라는 거지?

정기 총회에서는 보고 안건과 심의 안건에 이어, 논의 안건을 통해 본격적인 의견 공유의 기회가 마련된다. 단대에서는 학우들 사이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사항을 논의 안건으로 상정한다. 그 후 정기총회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한다. 또 필요할 경우 안건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는 표결을 통해 회의가 진행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논의의 방향이 확실히 정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실행 방향을 논의해야 하는지’ 혹은 ‘안건의 찬반을 논의해야 하는지’, 각 사항에 맞는 논의 방향이 제시돼야 한다.

구체적 실행 방향 or 찬반 토론

2014년 상반기 정기총회에서는 ‘구체적인 실행 방향’을 논의하도록 방향을 명확히 한 안건들이 여럿 있었다. 중국어대에서는 ‘학사 제도 개선 요구’에 대해, 서양어대에서는 ‘전임 교원 확충 요구’에 대해, 문제 상황부터 해결 방향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 효율적인 논의의 바탕을 마련했다.

‘찬성과 반대’를 통한 논의로 방향을 명확히 정해준 안건으로는 사회대에서 제시한 ‘계열제 모집’이 있다. 사회대에서는 자료집을 통해 이번 해부터 시행된 계열화에 대해서 새내기들이 느끼는 실질적인 문제점을 공유했다. 사회대에서는 전공 선택 경쟁으로 인한 학업 부담·전공 학문 전문성 약화와 같은 학업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새내기의 소속감 결여라는 심리적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사회대는 이러한 문제 상황을 바탕으로 찬반 논의 결과 계열제 폐지를 결의안을 채택했다.

우리 무슨 얘기 하려고 모인거니?

하지만 상반기 정기총회에서 논의의 방향이 명확한 안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범대의 ‘학사 정책 예고 요구’와 사회대의 ‘학생 자치권’ 안건은 논의의 방향 설정이 모호했다. ‘학사 정책 예고 요구’의 경우, 수강 신청 제도 변경이나 프로세미나 개설 등을 예시로 들며 갑자기 변경되는 학사 정책에 대한 예고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해결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유도 되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방식의 예고를 원하는지, 사항 별로 어느 정도의 기간을 두고 예고를 원하는지 등 실질적으로 학교에 요구하고자 하는 바를 논의하지 못했다.

또한, 사회대의 ‘학생 자치권’에 대한 논의 역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해 주제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생 자치권에 대한 논의는 크게 학생회와 학생자치권, 학생회 회원 및 학생회의 현주소, 현 학생회의 정책 방향이라는 3가지 주제가 제시됐다. 그러나 학생회와 학생자치권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 방향이 설정되지 않았다. 자료집을 통해서 학생회가 학교와 동등한 위치의 자치기구라는 점을 명시했을 뿐이었다. 학생회 회원 및 학생회의 현주소라는 주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스스로가 학생회의 정회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했으나, ‘학생회가 무엇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우리 모두 논의해 보자’라는 다소 모호한 논제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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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출석하고 보자. 문제 해결의 황금열쇠는 '일단 가'는데 있다

2. 정총에서 논의되는 안건들...

이거 정말 단대에서 해결할 수 있나?

우리는 보통 한 학기에 세 번의 정기 총회에 참여하게 된다. 과 정기총회, 단대 정기총회 그리고 전체 정기총회. 이 세 번의 정기 총회에서는 각각 논의할 수 있는 사항이 다르다. 그래서 모든 정기 총회가 그 나름의 중요성을 갖게되고, 우리가 각 단위에 적합한 안건에 대해 논의해야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해 진다. 우리 과 개강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외대 전체 총회에서 한다고 해결 될 리 없고 반대로 친일파 동상 제막에 대한 논의를 과 정기 총회에서 한다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기 총회에서는 각 단위에 적합한 안건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단대만을 위한, 단대 밀착형 안건

2014년 상반기 정기 총회에서는 다양한 단대 밀착형 안건들이 보였다. 중국어대에서는 어학 수업의 난이도 조정과, 중국어대 세미나를 대체하는 동문특강의 수업시간 준수 등 중국어대 학우만을 위한 문제에 대해서 다뤘다. 어학 수업의 난이도에 있어서는 초급중국어 수강만으로 다른 어학 과목을 따라가기에 수업 수준이 너무 높다는 점부터, 교재가 빈약해 급한 진도를 따라가기에 벅차다는 문제까지 논의했다.

서양어대에서는 네덜란드어과·이탈리아어과·포르투갈어과·스칸디나비아어과(이하 네이포스)의 전임교원 확충에 대해 다뤘다. 현재 서양어대에는 과 인원에 비해 전임 교수가 부족하다. 그 이유는 우리 학교의 교원 신규 임용 시행 세칙과 교육부의 교육공무원 임용령에 따라 네이포스의 교수를 새로 임용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학칙에서는 「해당분야의 지원자가 모집인원의 3배수 미만인 경우에는 그 분야의 신규 채용은 보류한다. 단, 특수외국어학과의 경우는 예외로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특수외국어학과’ 자체에 대해서는 자세히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네이포스가 특수외국어학과로 분류되지 않아 이들의 교수 신규 채용이 보류되고 있다. 또한, 교육령에서는 「특정 대학의 학사학위 소지자가 ... 모집단위별 채용인원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특수어과는 다른 대학에 없는 전공이기 때문에 외대 출신이 아닌 사람이 지원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이와 함께 사범대, 동양어대와 중국어대에서 공통적으로 우리들이 매일 느끼고 있는 불편함인, 단대의 자치 공간 문제에 대해서 논의 했다.

학자요구안, 학교 제출이 다가 아니야

그러나 특정 단대 정기총회에서는 단대 학우들만 느끼는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외대 전체 학우들에게 해당하는 안건이거나, 단대가 해결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안건도 발견 됐다. 이런 안건은 보통 학자요구안에서 발견 되었다. 기숙사 신설, 학식의 맛 개선, 운동장 흙 개선, 학내 시설 이용 무료화, 도서관 시설 보수 등이 단대의 학자요구안으로 상정 되었다. 당연히 모두 문제가 되고 있는 사항이긴 하지만 사실 이걸 내가 여기서 얘기한다고 단대 학생회가 해결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이러한 안건을 결의한 후에 단대 학생회에서는 이에 대해 학교에 요구안을 제출하는 것에 그쳤고, 총학생회에 책임을 넘기기만 할 뿐 이를 해결하려는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 학기 단대에서 학자요구안을 제출하지만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공유된 적이 없다. 외대 전체에 관련된 안건이라고 하더라도, 단대 정기 총회에서 결의가 됐다면 단대 차원의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3. 먼저 연락할 땐 언제고...

정총 끝난 후 더 이상 선톡 않는 학생회

정기 총회가 열리기 전에는 정기 총회의 홍보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이용된다. 건물 앞에 테이블을 놓고 홍보하는 이동 학생회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먹을 것을 나눠 주기도 하며 ‘포스트 잇 붙이기’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모으기도 한다. 온라인으로도 안건에 대해 설명해 주고 당일엔 잊지 않도록 문자까지 보내 준다. 그러나 정기 총회가 끝난 이후 그들은 더 이상 나에게 무언가를 먼저 알려주지 않는다. 과정이 공유 되지 않는다는 점은 많은 단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정기총회에서 논의했던 사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기총회를 성사시켰으니까 이제 할 일 끝났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눈이 빠지게 찾아 낸 결산 오류는 그래서 어떻게 고쳐진 건지, 학자 요구안은 그래서 언제 제출했으며 학교에서는 어떤 답변을 주었는지, 정기 총회가 끝나고 24시간 개방에 대해 학교와 얘기한다는 데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알려주지 않는다. 정기 총회를 홍보할 때처럼 유인물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기 총회의 전과 후가 다른 정보 공유로 인해 우리는 마치 ‘저기 너 자니..? 자는구나.. 잘자....’를 보내는 전남친이 된 기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학생회의 끊임없는 진행 상황 공유가 필요하다. 학생회가 분명히 지속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해도, 정보 공유가 없다면 이를 다른 학우들이 알 리가 없다. 학우들이 지적한 잘못에 대해서는 이를 시정해 공유하고, 함께 결의한 안건에 대해서는 학교의 답변과 이후의 대처 방법에 대해 정기 총회 이후에도 계속해서 함께 논의해야 한다.

정기 총회는 우리가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이런 정기 총회에 참여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기 총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의 의욕까지 꺾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고민해야 한다. 외대 전체 정기 총회를 비롯해 앞으로 계속 열릴 정기 총회에서는, 그 자체의 문제점 때문에 사람들이 정기 총회를 떠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많은 학우들의 관심 속에 ‘다양한 논의의 장’이 펼쳐지길 바란다.

곽지수 기자 yes_no_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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