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동 엄마는 인생의 절반을 중국에서 살았다. 아빠와 결혼하며 한국에 정착했다. 한국은 엄마를 조선족으로 분류했다. 3년 주기로 “전국 다문화 가정 실태조사”에 응답하기를 종용했다. “배우자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생활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때 귀하께서는 현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합니까” 그런 문항에 답하며 엄마는 대상화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파악했다. 이곳이 자기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거라 예감했다. 아빠와 결혼하며 20년 넘게 살던 곳을 떠난 엄마는 아빠가 믿을만한 가장이 아니란 걸 확인한 뒤부터 돈을 벌었다. 중국어 학원 강사로 시작한 노동은 기업 연수원 강사로 이어졌다가 학습지 강사로 변모했다. 근로 계약서를 쓰는 노동에서 학습지 수강 인원에 따라 급여 액수를 책정하는 노동이 됐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노동은 중심에서 도처로, 도처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엄마는 짜증을 부렸다. 나는 엄마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아빠 같은 인간이 되지 말라는 문장을 구태여 아빠 앞에서 말하는 맥락을 나는 별로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울었다. 엄마의 엄마가 죽었다. 엄마는 중국으로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지 못했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예슬씨는 2010년 자퇴했다. 그는 대학 학업을 중단함이 아니라 거부한다고 말했다. 대학은 더 이상 배움과 진리를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는 언급이었다. 취업시장으로의 진출을 종용하고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기성품처럼 찍어내는 곳이 대학이다. 학생은 팔릴만한 인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의 상품가치를 저울질한다. 졸업장은 자신의 배움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로 변했다. 그리고 대학은 거기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흐름을 더 빠르게, 유장하게 만들고 있다. 학생들은 자문할 수 없다. 자문해선 안된다. 편승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여기서 목소리를 내는 순간 레이스에서 이탈한다. 김예슬씨는 그 서글픔을 지적한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중략)... 그리하여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김예슬, <김예슬 대학거부 선언문>, 2010)” 미디어와 기성세대는 김예슬씨에게 투사의 이미지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한 A씨는 입학을 포기했다. A씨는 트랜스젠더(MTF)다. 태국에서 성전환수술을 받은 A씨는 법원에서도 여성으로 호명됐다. 입학 사실이 알려지자 신입생과, 재학생,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등에서 A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다. 6개 여대의 23개 페미니즘 단체는 입학 반대를 주장하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론은 확대됐다.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 성명서는 성별을 고정 불변의 정체성으로 간주한다. A씨를 “여자라고 주장하는 남자”라고 지칭하며 A씨의 입학이 “여자들의 공간을 침범하고 빼앗아 갈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여대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A씨의 입학은 그래서 허용할 수 없다. 스스로 여자라고 선언하는 남성의 침입까지 정당화할 근거로 남을 거다. 숙명여대는 지난해 3월 마약을 소지한 남성이 여자화장실에서 발각된 일이 있었다. 6월엔 여장남성이 캠퍼스를 활보하며 경찰에 체포된 적 있다. A씨의 입학 반대 성명엔 정당한 기본권 요구라는 의식이 깔려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의식의 발로가 아니라는 맥락이다. 2017년 서울시교육청은 강서구 폐교부지에 장애인학교(서진학교)를 설립하
나는 남자 고등학교를 나왔다. 영어 선생님은 여성이었다. 떠드는 소리가 수업 보다 커지는 때가 종종 있었다. 선생님은 화낼만한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았다. 닦달과 훈계의 시도가 몇 번 있었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는 체념한 듯 보였다. 우리는 그를 만만한 부류로 간주했다. <보스를 지켜라>란 드라마가 방영됐던 때였다. 줄이면 ‘보지’가 됐다. A는 수업 종이 치고 영어 선생님이 들어올 무렵에 굳이 그 드라마의 줄임말을 말했다. 그러면서 영어 선생님의 반응을 살피며 킬킬거렸다. 희롱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을 받겠다 싶으면 그저 드라마 제목을 말한 것뿐이라는 변명을 쏟아낼 거였다. 영어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했다. 내가 처음 보는 종류의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모멸에 익숙해진 이가 짓는 냉소의 표정인 듯싶다. A는 그런 종류의 희롱을 만만하다고 간주되는 여자선생님 앞에서만 구사했다. 수업이 끝나면 모두가 A주변을 에워싸서 이번 농담의 수위를 평가했다. 그들에겐 농담이었고 평가대상이었다. 폭력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한 학기 지나고 영어 선생님을 볼 수 없었다. 계약을 온전히 채우지 않고 학교를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군대에서 B선임병은…
2015년 교육부는 국립대학교 총장선출을 간선제로 시행하도록 종용했다. 대학구조개혁 평가항목에 총장선출방식의 배점을 높게 책정하는 식이었다. 직선제를 유치했을 때 선거가 가열되며 학내 파벌 형성, 금품, 뇌물 수수가 발생하고 이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대학들은 거부했다. 겨우 몇 십명의 표본 집단으로 이뤄지는 선거가 학내 여론을 대변하기란 불가능하다. 간선제는 50명 정도로 구성되는 추천위원의 투표로 선거가 치뤄진다. 추천위원에는 외부인사가 일정 비중 이상 반드시 포함돼 있어야 하며 2순위 까지의 후보를 교육부에 제청하면 최종 임용은 교육부에서 결정한다. 결국 교육부 입맛대로 총장을 임용하겠다는 뜻이었다. 80년대부터 지켜온 대학자율성의 후퇴였다. 교육부는 엄포가 아님을 보여줬다. 직선제를 유지하던 부산대학교는 그 해 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다. 강원대학교는 D+등급을 받고 재정사업에서 배제됐다. 별 수 없었다. 정부가 재정지원을 볼모로 쥐고 있으니 대학들은 간선제를 추진했다. 부산대학교 고현철 교수가 학내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투신한 것도 그때다. 그는 유서에서 교육부의 정책을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이라 표현하며 “대학, 나아가 사회의
불행한 인간은 스스로의 불행을 말할 자격 없다. 불행은 자기 의도와 무관하게 어쩌다보니 발언되거나 일각부터 조심스럽게 드러날 때 가치를 획득한다. 불행한 인간은 사람들에게 동정의 대상으로 회자될 때 비로소 ‘불행한 인간’이 된다. 동시에 불행한 인간은 표정과 동작으로 스스로의 불행함을 전시해야 한다. 그것들로 불행함의 정도가 가름된다. 불행한 인간의 명랑한 표정은 자기 처지에 맞지 않다. 사법부는 1심 판결을 뒤엎고 안희정 전 도지사의 유죄를 판명했다. 사법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위계가 있다고 해석했다. 가해자는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이다. 피해자는 그의 업무에 관여하는 수행비서다. 이 구도에서 누가 권력을 갖고 있는지는 자명하다. 권력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만큼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기 의지와 다른 행위를 하도록 종용할 수 있었다. 그만큼의 권위가 그에게 분명 있었다. 폭력 이후에 피해자가 가해자와 웃고 메신저를 주고받고 수행비서의 임무를 지속한 건 위계에 굴종해서다. 위계를 거부할 때 수반될 상황이 두려워서다. 피해자는 피해를 신고 했다. 더 이상 권력에 굴복할 수 없어 그랬다고 말했다. 거기에 어떤 이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시대다. 능력의 유무 혹은 능력이 얼마나 계발됐느냐에 의해 개인의 성취가 가름된다. 성취는 보상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0’에서 출발함을 전제하고 경쟁과 노력 여하에 따라 가장 능력 있는 이가 응당한 대가를 받는다는 식이다. 환경, 자본 같은 것들이 변수로 작동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결국 능력을 가진 이가 합당한 사회적 보상을 쟁취할 거란 기대다. 능력주의를 신앙처럼 떠 받드는 이들은 개인의 노력을 강조한다. 시련은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 같은 거다. 극복 가능한 시련만이 부여된다. 자수성가의 신화가 그것을 반증한다. <정의론>을 썼던 하버드 대학 교수 존 롤스는 능력주의를 착시라 규정했다. 능력은 순전히 운에 의해 좌우된다. 태어날 때 이미 배당된다. 그건 계발한다거나 경쟁을 통과한다고 해서 더 나아지는 게 아니다. 보통의 인간은 후천적으로 능력을 학습한다지만 능력을 계발할만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다. 환경 역시 운이다. 어떤 가정에서, 환경에서 태어날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다. 그는 고등학생 때 2주 인턴을 하고 의대 병리학 논문의 제1저자가 됐다. 논문 저자가 돼 본 경험을 비롯한 여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