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제52대 총학생회 '나루'가 제시한 학점 지우개 도입 공약에 학생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강대학교의 A학점 비율은 서울권 상위 15개 대학 중 가장 낮다. 이에 '나루는' 이미 취득한 학점을 없앨 수 있는 제도인 ‘학점 지우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나루’ 임기의 약 4분의 1이 지난 현시점에서, 학점 지우개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주요 서울권 대학 중 ‘학점 짠맛’ 1등, 서강대학교

대학알리미 ‘전공과목 성적 분포’에 따르면 2023년 1학기 기준 서강대학교의 A학점 비율은 27.8%로 주요 서울권 대학 15개(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하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중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했다. 상위 15개 대 중 가장 높은 A학점 비율을 기록한 학교는 고려대학교(55.3%), 그 다음으로는 성균관대(55.29%)가 뒤를 이었다.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 또한 45%가 넘는 A학점을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강대학교의 A학점 취득 비율이 낮은 이유는 학사 규정상 학점 지급 비율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강대학교는 전체 수강생의 30% 이내에서만 A학점을 부여할 것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교내 언론사를 통해 “학점 지급 비율을 개선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서울 시내 주요 6개 대학(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 5개 대학은 재수강 시 취득할 수 있는 최대 학점을 A0로 제한하고 있는 반면, 서강대학교는 A-로 제한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더 엄격한 학점 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약에서 현실로? ‘학점 지우개’, 어디까지 왔나
학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발맞춰 총학생회 ‘나루’는 ‘학점 지우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학점 지우개’란 이미 취득한 낮은 학점을 완전히 삭제할 수 있는 제도로, 낮은 학점을 갱신하는 ‘재수강’과는 차이가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는 폐강되어 재수강이 불가능한 강의에 한에서 학점 지우개를 시행 중이다. 또한 고려대학교는 2024년 3월 1일자 학사운영규정 개정을 통해, 기존에는 완전 폐지되어 재수강이 불가한 과목에 한해서만 가능했던 학점 지우개 대상 범위를 기취득 과목 전체로 확대하였다.
나루는 노션을 통해 공식 인스타그램에 ‘나루 공약 이행 리더보드’를 공개하고 있다. 여러 공약 중 교육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학점 지우개는 ‘취득학점 포기제도’라는 이름으로 서하진 교육국장이 이행 중에 있다. 나루는 2월 14일 공약 관련 학사지원팀과 1차 미팅 완료 후 타학교 취득학점 포기제도 현황을 파악 및 컨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3월 25일 총학생회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취득학점 포기제도에 관한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설문조사를 배포했으며, 4월 중에 재학생 대상으로 오프라인 서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점 지우개’에 대한 학생들의 엇갈린 목소리
학점 지우개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서강대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는 나루의 당선 이후 학점 지우개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학점 지우개를 찬성하는 학생들은 서강대학교의 A학점 비율이 다른 학교에 비해 현저히 낮고, 재수강을 하여도 A-까지만 갱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학점 지우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취업 상황에서 타 대학과의 경쟁을 고려할 때, 학점 지우개 도입은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학점 지우개를 시행 중인 고려대학교의 재학생 A 씨는 “학점이 상대적이라 교수님이나 수업에 따라 같은 노력을 해도 아쉬운 학점을 받을 때가 많다”며, “낮은 학점을 받은 한 과목이 전체 학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A 씨는 “성적을 지울 수 있었기에 해당 학기의 성적을 구제받았고, 그런 면에서 학점 지우개는 순기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학점 지우개 실행에 반대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미 재수강을 통해 A-까지 학점을 올린 이들, 혹은 학점 지우개를 실행하기 전 학점을 취득한 학생들에게 불공정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노력 없이 과거의 기록을 삭제하는 것은 기존에 높은 학점을 받은 학생들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학점 지우개' 과연 실현 가능할까?
학점 지우개 제도의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학생들의 관심과 요구가 꾸준히 이어지고는 있지만, 실제 제도화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학점 경쟁이 치열한 대학 사회에서 학점 지우개 제도의 도입은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많은 학생의 학업 전략과 진로 설계에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그 파급력도 작지 않다. 이에 따라 총학생회의 신속하면서도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
제도 도입을 바라는 목소리는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실적인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학점이라는 민감한 평가 지표를 일부라도 무효화한다는 점에서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는 불가피하게 따라붙는다. 자칫 잘못 시행될 경우 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물론, 전체 학사 운영의 일관성에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시적인 관심과 여론에 휩쓸리기보다는, 제도의 실효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교한 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제도가 실제로 도입되더라도, 이를 둘러싼 세부 기준과 행정 절차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마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도의 실질적인 효과와 지속 가능성, 그리고 기존 제도와의 조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학생 간의 불필요한 갈등이나 제도 악용 등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총학생회는 물론 대학 본부와의 긴밀한 협의, 그리고 학생 사회 전반의 공론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할 시점이다.
학점 지우개가 과연 실현 가능한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물음에 명확한 답은 아직 없지만, 이 제도가 단순한 요구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제도적 검토와 실현 가능성의 평가로 이어지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학생들의 기대와 회의가 공존하는 가운데, 그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논의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소민교 기자(sohminkyo02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