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동네, 대림동을 걷다

  • 등록 2026.03.10 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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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이음새'와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대림동을 걷다’ 프로그램 체험기

 

한국어보다 중국어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 김치와 두리안 냄새가 뒤섞여 퍼지는 곳, 중국말과 낯선 한국말이 뒤섞여 들려오는 곳.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차이나타운’ 대림동에 설 마지막 연휴 스무 명의 행렬이 거리를 누볐다. 비영리단체 '이음새'와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대림동을 걷다’ 프로그램으로 찾은 방문객들이다.

 

 

‘대림동을 걷다’는 서울 내 중국계 이주민 밀집 지역인 대림동을 걷는 탐방 프로그램이다. 3년 간 프로그램을 통해 약 2,600명이 대림동을 다녀갔다. 행사를 이끌어 온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박동찬 소장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대림동에 씌워진 낙인을 지우고자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대림동이 코로나 팬데믹의 진원지, 보균지로 소비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직접 걷고 체험해보면, 대림동 주민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조금씩 걷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림동을 걷다’ 프로그램을 통해 3년 간 약 2,600명이 대림동을 다녀갔다.

 

대림동은 영화 <범죄도시>의 배경지로 알려지며 범죄율이 높은 위험한 동네라는 인식을 받아왔다. 작년 말에는 보수·극우 단체의 ‘혐중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박 소장은 “(대림동을 둘러싼) 이슈가 이어지면서 활동을 이어갈 명분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2월 18일 오전 11시, 대림역 6번 출구에 전국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모였다. 부모님과 손 잡고 온 아이들, 부부, 모녀, 대학 친구들, 혼자 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구성원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행사는 박 소장의 대림동 소개로 시작됐다. 

 

 

대림동은 신대방동과 신도림동 사이에 자리한 동네다. 1949년 두 지역이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신대방동의 '대(大)'와 신도림동의 '림(林)'을 합쳐 이름이 지어졌다. 지명 자체에 두 지역의 경계에 있다는 뜻이 새겨져 있는 셈이다. 

 

 

이날 탐방 루트는 대림 3동을 출발해 대림중앙시장이 자리한 중심 거리를 지나 대림 2동까지 이어졌다. 대림동은 명절 막바지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가게마다 금색의 복(福) 글자가 쓰인 붉은 장식품이 걸려 있었고, 식당 안은 점심때부터 모임 인파로 북적였다. 열흘 가까이 설을 쇠는 중국 문화권 특유의 긴 명절 기운이 골목 구석구석 배어 있었다.

 

 

참가자 행렬은 박 소장을 따라 대림 3동 초입을 걷기 시작했다. 오 분 정도 걸어 멈춰 선 곳에 대림동 골목길에서 보기 드문 고층 빌딩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낮은 층고의 건물이 즐비한 대림동 골목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이었다. 대한민국 신진건축상 우수상과 미국건축상을 받은 정의엽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로스톤'이다.

 

 

박 소장에 따르면, 카페 '로스톤' 건물은 한국과 중국의 공통분모인 산수화에서 영감받아 설계됐다고 한다. 외벽에 바위산 조형물이 붙어있는데, 이는 서울에서 녹지율이 가장 낮은 대림동을 겨냥한 상징적 장치라고 한다. 동네 이름에 '수풀 림(林)' 자가 들어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울 내에서도 가장 녹지율이 낮은 대림동의 현실을 건물 외관으로 드러낸 것이다.

 

 

두암어린이공원에 멈춰 선 박 소장은 대림동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7~80년대 한국의 산업화 시기, 대림동 일대는 근방 구로 공단(현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터전이었다. 당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지방 청년들은 값싼 반지하, 옥탑방, 단칸방이 모여있는 대림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이른바 '벌집촌'이라 불리는 판자촌에서 몸 하나 겨우 누이며 수세식 화장실을 함께 나눠 쓰며 살았다. 구로공단의 쇠락과 함께 청년들은 떠났고, 그 자리는 중국계 이주민들이 채웠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계 이주민들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며 대림동은 대표적인 ‘중국인 마을’이 됐다.

 

 

2000년대 후반 중국 동포와 중국인들이 대림동 일대로 이주해 오며 대림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이주민 밀집 지역이 됐다. 이들이 정착하며 다문화 가정도 늘어났다. 대림동에 위치한 대동초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문화 학생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2025년 대동초의 이주민 학생 비율은 90%에 달한다.

 

 

대동초 바로 앞 위치한 다사랑 어린이공원에는 어린이들 대신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평일에는 테이블이 깔려 포커 판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박 대표는 이러한 풍경이 펼쳐지는 이유는 대림동에 경로당, 복지관 등 ‘노인들이 소비할 공간이 없어서’라 지적했다.

 

 

‘대림동을 걷다’ 참가자 행렬은 대동초에서 300m 정도 걸어 대림중앙시장에 도착했다. 참가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행사의 세부 프로그램인 ‘대림중앙시장에서 장보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시장에 들어서니 한국의 전통 시장 풍경과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두리안 특유의 묵직하고 강렬한 냄새가 시장 입구를 메웠다. 한국의 시장에서 볼 수 없는 향신료와 약재들이 빼곡히 쌓인 매대도 보였다. 더 들어서자, 찜기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 사이로 익어가는 꽃빵, 진열대마다 쌓인 월병과 푸주 등 중국 명절 음식들이 보였다. 가격표에는 한글과 중국어가 나란히 병기돼 있었다.

 

 

참가자들은 대림중앙시장에서 장을 본 뒤 대림중앙시장 인근 위치한 이주민센터 ‘친구’ 로 모였다. 최근 대림동에 센터를 개관한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는 한국에 머무는 이주민을 위한 비영리단체로 법률 상담, 이주민 교육 프로그램, 이주 배경 청소년 교육 지원 등의 도움을 주고 있다.

 

 

이주민센터 '친구'에서 대림동을 걷다'의 마지막 순서가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대림중앙시장에서 장 본 음식을 서로 나누며 시장에서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한 참가자는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 망설였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반만 사도 된다고 가격을 깎아주었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참가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음식은 '냉면 구이'와 '푸주 쫀드기'로 불리는 '라이타오'였다. 

 

 

행사는 참가자들의 소감 나눔과 기념 촬영으로 마무리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조다빈 (23세)씨는 “지금껏 대림동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대림동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깰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사실 직접 오기 전까지 막연한 편견이 있었어요. 시장 상인들도 불친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면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엄청 나쁜 동네라거나 특별한 동네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림동을 걷다' 행사를 주최한 '이음새'와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는 계속해서 경계 위의 이주민들에 대한 이해의 장을 이어갈 예정이다. 오는 3월에는 이슬람 사원 방문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김수영 대학알리 기자(suyoung8649@gmail.com)

김수영 기자 suyoung86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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