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2026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도약'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프롤로그
맑고 파아란 하늘에 한두송이 피어난 순백의 매화 한두송이를 발견한 2월 마지막주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후배들을 광주 전남대 근처에서 만났다.
10여년 넘게 대학언론의 제 역할을 위해 동분서주,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열정과 정성이 30여년 전 전대신문과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집행부 활동과 오버랩 됐다. 지천명 나이대의 절반을 지나면서도 살아온 삶 전체의 원동력과 저력을 배우고 익힌 시기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단연코 그 시절을 꼽는다.
아무리 달라지고 다른 각도의 어려움이 있는 시대 상황에도 끊임없는 도전과 용기, 공익을 위한 처철한 몸부림과 관계 맺기에서 다져지는 인격 수양과 내공은 사서라도 경험해야 자신을 버티는 진짜 힘이 된다는 사실인 것 같다. 다시 그 시절을 반추하며 패기 넘치는 청년 후배들을 만나 힘을 얻는다.
1990
대학 1학년 과에서 여러 활동을 하다 11월 전대신문 수습시험에 응시했다. 자연대 쪽에서 5·18 광장에 울려 퍼지는 신디 연주 소리의 파동을 느끼면 왠지 뭔가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묘한 기분을 떨칠 수 없던 차에 전대신문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수습으로 뽑혀 편집실에 처음 들어간 날 아마 신문 평가회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신문을 펴고 신문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참 특별해 보였다. 나도 실력을 키워 저 대열에 합류해 잘 해야할텐데 하는 마음으로 대학 1학년을 마무리할 시점 전대신문 기자가 되었다.
1991
웬만한 집회에 모든 상황을 취재하며 속기사처럼 출연진의 연설을 받아 적어 보고서를 내고 작은 기사 쓰는 원고지에 단신을 작성하며 단련된 실력으로 취재부(나중에 대학부) 정기자가 됐다. 35만평 전남대 구석구석을 걷고 뛰었던 기간이었다.
박승희 열사의 분신으로 이어진 가슴 아픈 분신 정국으로 시국은 연일 뜨겁고 예상 못한 일들이 이어졌다. 오전부터 어떤 땐 새벽녘까지 이어진 여러 행사에 눈코뜰새없이 취재하고 고민하며 기사를 쓴 당시 4, 5월 봄부터 일년은 전대신문사 기자 모두가 역동적이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 하루를 살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의 중심으로도 역할을 했던 전대신문은 당시 전국에서 취재오는 여러 기자들로 꾸려진 공동기자단 등을 도왔다.
또 일주일에 한 번 12면으로 나왔던 신문을 실시간 속보며 지면을 늘린 특집 보도를 할 정도로 긴박하게 대처하며 역량있는 대학신문 역할을 했다. 자긍심이 많이 느껴졌다. 각 부서 부장 정기자 수습까지 아마 30명이 넘는 대가족으로 뭐라도 할 수 있는 팀웍이 있었던 전대신문의 전성기였으리라 짐작한다.
얼마전 돌아가셨는데, 사학과 이홍길 교수님이 주간으로 계셨던 그 해 겨울 인천에서 배를 타고 전대신문 최초로 단체 중국연수를 가서 함께 겪었던 여행의 동고동락 장면이 떠오른다. 그만큼 전대신문에 여러 시도가 있었던 1991년.
그렇게 다채로운 경험을 하며 불어나는 취재수첩을 들춰보고 치열하게 신문으로 진실을 알렸던 소중한 순간 순간이 내 삶에 큰 밑뿌리가 되었다.
1992
개인 역량보다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한 취재부장 시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총장선거, 전대협 출범식, 전대기련 분과학교, 신문사 전체 차원에서 간 농촌봉사활동, 중요한 대통령 선거 등 굵직한 사안을 책임지고 맡아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 그해 다행히 동기 부장들이 짱짱하게 함께 했다.
여러 역학관계가 있는 총장선거 전후 많은 취재원들을 만나 경청과 신뢰를 배웠다. 취재처가 대학본부와 기관들이어서 들랑날랑 관계가 쭉 이어져 학교 직원들과도 정이 듬뿍 들었다. 평의원회실은 편하게 차마시며 기사쓸 수 있는 장소로도 활용할 정도로 좋은 분들을 만나 사람 관계의 훈련을 했던 것 같다. 수강신청 대란이 있었는데 학교측과 학생들의 의견을 중재하며 대안을 제시해 명실공히 학교의 중심 언론으로의 역할에 무게가 실어지기도 한 특별기사가 실린 신문 1면도 기억난다.
총학생회 단대 학생회 당선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취재해 인간미 넘치고 친근하게 지면을 다르게 구성했던 일, 참신한 사진과 글로 전대협 출범식 이모저모를 대중적으로 보도했던 내용 등 전대신문의 대중지로서의 면모를 위해 일요일 주말도 없었다. 철야하고 월요일 눈꼽만 떼고 광주일보 공무국으로 신문 판 짜러 달려갔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윤전국에서 털털털 소리와 함께 나오는 신문 들고 훑어보면 모든 수고가 봄날 눈녹듯 녹았던 그 순간
일주일 함께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전대신문을 만들었던 동기 선후배가 어떤 인간 관계보다 애뜻하고 각별한 정으로 남는 이유다.
1992년 그 해는 전대기련 중앙 집행부의 활동이 활발한 조직이어서 전국 대학신문기자들 천여명이 넘게 모여 교류하고 전문 분과 학교를 다양한 내용으로 운영하며 실질적인 교육활동을 한 전성기였다.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전국 각지 대학신문기자들과의 교류와 소통이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들어지는 참 뜻깊은 시간들이었다.
기존 언론의 의도적인 왜곡 보도가 많았던 대통령 선거기간 전대기련에서 발빠르게 전국신문을 만들었는데 그 때 지원해서 일주일에 한 두번 서울에 올라가 함께 했던 전국신문 특별팀 기자 동기들은 지금도 연락하며 만나는 소중한 인연이다.
1993
전대신문사를 퇴임하고 4학년, 다들 본연의 진로와 미래를 위해 준비했던 시절 나는 자연스럽게 그 시절 많은 선배들이 그랬듯이 대학신문의 중요한 역할을 돕는 호남지역대학신문기자연합 일을 하게 됐다. 외연을 넓혀 광주 전남북 학생 기자들의 삶과 고민, 신문 만드는 자질과 능력을 다방면으로 키울 수 있는 도우미 역할이었다.
더큰 조직을 배우고 그속에서 연결고리가 되는 체계적인 능력을 키우고 책임감을 느끼고 실행하는 사회생활의 중요한 경험이었다. 전국 분과학교가 방학 때면 대대적으로 열렸는데 수십명의 후배 기자들을 인솔해 오가는 대절 버스 안에서 느꼈던 책임감과 수고로움에 대한 뿌듯함은 그 후 아이들 교육 사업을 하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
1994
부모님께는 서울로 취직 준비 한다고 떠난 서울 중심의 활동 전대기련 중앙집행부 시절, 전국의 대학신문사와 기자들을 만나는 의미있는 날들이었다. 벅찬 일들도 많았고 몸도 아프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고생과 보람은 자처해서 내공을 쌓는 지름길이었고 지금도 전국망을 잇는 선후배 인연이 이어지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는 살아있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당시 한겨레 보다 먼저 홍대신문이 시각디자인학과와 협업해 만든 가로짜기 편집의 혁신적 변모는 더디게 따라가는 지방 대학 신문사에서는 볼 수 없는 시도였다. 전대기련 차원의 대학신문 지면 혁신 사례가 전체 언론의 시금석이 되었고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감동이었다. 1995년 ‘파괴와 창조’ 편집 책자 발간 등 나중에 전대신문 편집의 대전환을 하는 중요한 매계가 되었다.
1995
전대기련 일을 마무리 하고 내 청춘 혼신의 힘을 다했던 노하우를 전대신문 발전으로 이어 잘 마무리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부장 일을 반년 하게 되고 여러가지 교육을 위해 도움이 될 내용을 '원칙과 전통2' 라는 스타일북 작업으로 마무리 했다.
졸업한 선배가 들어가 옥신각신 어울리고 함께 울고 웃었던 터라 당시 95 수습들 94 정기자들 93 부장들과는 각별한 사이같은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당시 염민호 교수님이 간사로 계셨는데 동우회보를 함께 만들며 얼마나 전대신문에 대한 책임과 애정이 깊으신지 가까이서 보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원없이 모든 시간과 최선을 다해 보낸 대학신문과 관련한 활동은 내 인생이라는 큰 나무에 그 어떤 시련과 풍파가 와도 버틸 수 있는 강한 용기와 뒷심이 되기에 충분했다. 혹자는 왜 바보같이 자신의 앞가름을 하는 취업과 진로를 고민하지 않고 살았느냐고 걱정하며 물었지만 아낌없이 대의를 위해 모든 상황을 감수하며 모든 걸 던져 봤던 그 시간은 강한 생명력 있는 나무 저 깊은 곳 밑뿌리와 같은 저력을 안겨 주었다.
에필로그
아마도 짐작한다. 대학신문사 선후배들이 어디 계시든 다른 풍모와 인격,작풍이 다른 성과 있는 일을 해내는 열정과 능력을 어디서 키우고 배웠냐고 물으면 대부분 대학신문사 학창시절을 꼽으리라고.
2026년 현재 달라진 대학 풍속도에 예전과는 다르게 힘든 현직 기자들을 몇 주 전에 만났다. 자식벌 되는 후배들과 금방 친해지고 얘기가 통하는 힘은 대학신문에 대한 애정이며 신문 기자로서의 시대를 초월한 소명의식과 노력의 참맛을 본 공감대일 것이다.
‘시대를 바로보는 청년의 눈빛 전대신문’ 내가 20대를 오롯이 몸담았던 전남대 신문사의 기치다.
대학 신문 기자! 우리들 청춘의 영원한 사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