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금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2024.02.25 10:11:06

문수훈 전 <국민저널> 편집위원장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눈떠보니 대학언론인

 

늦깎이 대학 언론인이 되었습니다. 대학 언론은 무릇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제넘게도(당시 학교 관계자 표현에 의하면) 학교 예산에 관한 대담을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학생자치기구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조직에 대한 탐사보도를 위해 학보사와 합동 취재도 시도했습니다.

 

모두 예상하신 데로 금방 들통 났습니다. 언론 3사(학보사, 영자신문사, 방송국) 합동 워크숍에서 학교 측 관계자에게 공개적으로 당한 면박과 비난을 훈장으로 얻고 그만두었습니다. 애초에 학번에 맞지 않는 특별대우였으니 조용히 떠나주는 게 남은 구성원에게 덜 피해 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도전해보았기에 짧지만 아쉽기보다는 함께해준 동료들에게 미안했고 누군가를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눈감으니 독립언론인

 

복잡한 이슈들에 관심 끄고 살자니 생각지도 못 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모교가 어느 날 교육부의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라는 처음 듣는 희한한 타이틀을 얻었는데 아무도 책임 있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모든 학우가 사태의 본질은 모른 채 우왕좌왕하며 당황스러워하고 급기야 총장님 면담을 요청하며 학교 본부를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가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해주어야 할 텐데 그럴 사람들도 매체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소통이 절실한 시기에 독립신문을 만들었습니다. 뜻을 함께해준 건 학내언론사와 단과대학생회 출신 선후배들이었습니다. 모두 의기투합해 4페이지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만들고 인쇄해 무가지로 배포했습니다.

 

첫 난관은 편집이었습니다. 인디자인이나 포토샵조차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방법은 한가지 뿐! 한글워드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름 잘 해냈습니다. 신문이 학내에 퍼지자 학내언론사 관계자들이 주요 매체의 편집 후원 없이 이런 퀄은 불가능할 거라며 의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악명도 명성이라고 기분이 살짝 좋아져서 다음 호에는 지면을 더 늘렸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순수 대학독립언론‘국민저널’은 존재만으로 이바지했다며 대학 언론인 상까지 받는 영광을 얻었고 학기를 거듭해 학내구성원들의 인식에 반듯하게 담기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독립언론의 고민

 

독립언론을 하면서 가졌던 두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 후배님들이 가지는 고민과 대동소이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편집권 자유가 주는 부담감입니다. 독립언론은 사실 데스크도 지도교수도 없이 순순 우리 판단으로 제작하는 신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칫 편향되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나 사설을 작성하게 되는 문제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또 너무 위축되어서 자기검열이 지나치게 되는 모순도 생깁니다.

 

경험을 빗대어 이야기해보자면 결론은 다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표현을 절제하고 반드시 전해야 하는 사실을 중심으로 써내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언론장학금이나 취재비, 공간 확보 등이 어려운 독립언론의 특성상 활동가들의 열정에 의지하다 보면 한계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학보사 사무실이나 정기 인쇄간행물 여부가 언론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도서관 한쪽에서 기사를 편집하다가 학우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해 기사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고 사비로 충당하던 인쇄가 버겁다면 온라인판으로 전파력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왜 대학에는 언론이 필요한가?

 

대학이라는 공간은 무엇인가요? 적절한 학습과 평가된 학점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약식과정에 불과하다면 학내구성원들의 학습과정 외 활동을 권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치회와 동아리 같은 작은 공동체 기구들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보장하는 것은 관성에 불가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대학교는 공동체입니다. 단순한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 20대라는 공통의 세대가 많이 모여드는 거대한 커뮤니티로 법적 미성년을 벗어나 사회의 주체로 성장하는 시민들이 넘칩니다.

 

그러니 이 공간에서 공론의 과정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작게는 시민공동체 내부의 이야기들이 다뤄져야 하고 학내 이슈와 학생 간의 갈등까지 다뤄지지 못할 내용은 없습니다. 졸업하면 책임질 일 없는 학생들은 빠지라는 운영주체들의 이죽거림에도 논리와 철학으로 응대 해야하고 서생의 문제의식으로 치부되면 궁극에는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운영의 소중한 재원인 등록금을 언급하며 미스터리 쇼퍼라도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주체인 20대들의 공론장 형성의 역할이 대학언론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의지가 아니라 관성으로 찾아온 공간에서 공론이나 소통이 일상화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학 내에서조차 20대 공동체 내부에서 해소되지 못한 갈등과 분열은 곧 사회로 전파될 위험이 큽니다.

 

제가 독립언론을 짧지만 뜨겁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지점에는 분노도 있었지만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대학가를 강타했을 때 학생들의 뜨거운 참여에 열광했지만 저는 학우들의 소통 갈증을 해소 내지 못한 학내자치기구와 대학 언론의 역할 부재에 책임을 느꼈습니다.

 

대학 언론인의 자긍심

 

대학 언론인의 역할은 고발과 투쟁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더 크고 가치 있는 일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과 소명의 경계에도 서지 못할 일에 20대면 응당 누려야 할 지루함과 유희를 유예하다 못해 통째로 소거 당하는 기억만이 남겨질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공명심을 심어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나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 됩니다.

 

학교 밖 이슈에 학내언론의 역할은 더 무궁무진합니다. 아니 이곳에서 더 큰 책임의식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기성언론이나 정치영역에서 ‘청년’은 또 ‘20대’는 늘 매력적인 주체로 인식하지만 진지하고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무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것은 1차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몫이 됩니다.

 

소홀히 하면 손해도 우리들 몫이 됩니다.

 

끝으로 누군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알려주지 않아서 낭패가 되는 일은 꼭 피했으면 좋겠다.

 

왜 내가 해야 하는가?

당신이 지금 그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우연이 대부분이라고 하는 말은 점점 통계적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경제학 교수도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연히 태어난 나라가 운 좋은 나라가 되기를’

 

여러분이 우연히 시작한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 행운이 된다면

시간 들여 작성한 기사가 대본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영감과 사고의 확장을 꾀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했을 우리의 마음에 균열을 준다면

그래서 아직 성장 중인 20대 시민들의 마음속에 포용과 연민의 감정을 만들어준다면

그것만큼이나 우리 사회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 길이 또 있을까요?

 

참 고생 많습니다. 더 고생해주세요. 응원합니다. 함께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우리가 또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에서 다시 만나기를

문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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