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차종관이 퇴임한다기에 축하한다고 했더니 관짝에 들어가 있던 나를 끄집어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의도적으로 상실해 자신을 보호한다고 한다. 더듬어도 기억이 잘 안나는 걸 보니 학보 생활이 고통스러웠단 증거다. 그러게 왜 학보를 해서..
모든 문제는 마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것은 진리다
배재신문은 혼자 운영됐다. 들어가보니 국장이 없었고, 너 국장하라길래 수습도 없이 1학년 국장이 탄생했다. 선배 그게 뭐죠? 먹는건가?
발행 간격은 격주였고, 대판 4면을 혼자 썼다. 조판도 직접 했다. 데스킹도 내가 보고, 원고도 내가 작성하고, 디자인도 내가 짜다 보니 조판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에 바로 기사를 갈겨 넣었다. 미쳐 돌아간 거다.
당연히 퀄리티는 조악했고, 문장은 길었다. 여러 학보사의 기자를 만났다. 벤치마킹하려고 갔더니, 학보사가 얼마나 힘든지만 들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계속 해야하나 고민하며 마감을 치다가, 당연히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마감 앞두고 하는 딴짓이 가장 재미있는 법. 하라는 마감은 안 하고 들었던 것들, 겪었던 것들을 기사로 써서 조판하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반응이 좋았다. 당시 즐겨 보던 페이지, ‘내가 광고회사 힘들다 그랬잖아’에서 따와 ‘내가 학보사 힘들다 그랬잖아’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후속작들을 올렸다. 자기도 콘텐츠 만들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학힘’의 시작이다. 아, 물론 학보 마감은 당연히 망했다.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
국장, 부장, 정기자, 수습기자 할 것 없이 콘텐츠에 공감했다. 방송국, 교지도 공감했다. 퇴임한 사람들도 추억에 젖었다. 열악한 현실을 나만 겪는 줄 알았는데, 다른 곳도 마찬가지구나. 동질감이 생겼다.
하나씩 제보가 들어왔다. 주간이 기사를 킬한다. 편집권을 침해한다는 소식부터, 저녁 늦게 수습기자에게 톡이 오면 두렵다는 국부장단의 하소연 등등.. 가벼운 문체로 풀어 콘텐츠로 만들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백지발행이다. 소식을 페이지에 전했다. 기성언론이 소식을 접했고, 기사로 적었다. 1년에 1번은 백지발행 사태가 터졌다. 나중에 모 학보사 국장에게 말 들어보니, 내학힘을 보고 백지발행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았단다.
인기가 많았던 이유? 우리가 타겟이니까
내학힘이 왜 인기가 많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타겟이고, 우리가 콘텐츠 제작자인데 우리 맘에 드는 기사 쓰고도 재밌지 않으면 그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학보, 교지, 영자, 방송국은 모두 학교 내외의 소식을 전한다. 독자인 교내 구성원들이 어떤 걸 궁금해할지를 찾아야 한다. 허구헌 날 터지는 학제개편은 물론이요, 흡연구역, 휴게실, 사건 사고 등. 일단 쓰고 보는 거다. 그러다 하나쯤 얻어걸리면, 왜 그 기사가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는지 고민해보면 된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기사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회
학보사는 여론 전달도 하지만, 조성도 한다. 궁금해하는 걸 찾아야 한다. 아니면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학생회랍시고 뽑았는데 제대로 일을 안 한다? 그러면 공약 이행률 점검해서 기사 하나 쓰면 된다. 학생회에서 고소하겠다고 하면, 하라 그래라. 대한민국에서 학생회가 학보사 고소해서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 고소 대행할 변호사 쓰려면 최소 330인데 그 돈은 어디서 났을까? 라는 기사도 쓸 수 있고, 아주 좋지 아니한가.
대학당국도 마찬가지다. 요즘같이 학생 귀한 시기에, 완전한 허위 보도가 아니라면야 징계위 열어서 제적시키는 건 제정신 아니고서는 못 한다. 기사화되면 온갖 욕을 다 먹을 텐데 과연 누가 그걸 할 수 있겠나. 잘해야 해직이다.
오히려 기성언론으로 가게 되면, 제약이 있다.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다만, 현생을 살자
후회하는 것이 여러 개 있지만, 그 중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이 있다. 현생을 안 산 거다. 그놈의 학보 때문에 시험을 안 봤고, 올 F가 나온 적이 있다. 인간관계는 대학언론 관련인들로만 가득 찼었다. 요즘은 연락도 잘 안 한다.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긴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가장 큰 후회다.
학보사 임기를 끝까지 한다고 치면 3년이다. 3년 뒤를 생각해야 한다. 사명감과 정의감에 학보사에 집중해 임기를 아주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지만, 이후에 남는 것은 빛바랜 추억과 그땐 그랬지라는 꼰대 A다. 처참한 학점과 대외활동 하나 못 한 자신의 이력서를 상상해보라. 활동도 좋고 취재도 좋고, 기사 쓰는 것도 좋지만 무조건 적당히. 적당히 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발행 간격 어긴다고 해서 심각해지는 건 당사자들뿐이다. 독자들은 신경 안 쓴다. 그럼, 건투를 빈다.
2026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도약을 맞아 '첨언'
후배들이 운영하는 톡방에 대학언론의 위기를 주제로 한 기사들이 속속 공유되고 있다. 개강했다는 말이다.
내가 입사할 적, 그 이전에도 대학언론은 늘 위기였다. 편집권 제한과 기자에 대한 인사조치 등, 심심하면 대학본부에 두들겨 맞는게 대학언론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교지가 생겼고, 학보, 방송국, 영자, 교지. 4개가 대학언론을 형성했다.
흔히 대학언론에 대해 사람들이 읽어주지 않는다고, 담론 형성에 실패했다고 말하며 이것이 위기라고 칭한다. 글쎼, 시의성이 한참 지난 기사에 클릭을 할 이유는 무엇이며, 이 기사가 나한테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도 체감되지 않는데 굳이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내학힘을 이어간 내대힘도 성과를 크게 못 내고 있다. 이것도 본질은 같다고 본다.
읽고 싶은 콘텐츠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읽을 필요를 못 느끼는것이다. 멸망한 학보사의 10년 전 편집국장의 말이라 들을 필요를 못 느낄 수 있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본질은 같다.
쓰고싶던 기사가 몇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진보, 보수 학생 간의 패널토의. 뉴스에 자주 출연하는 교수의 입을 빌린 선거 예측, 학생식당의 조리원, 학교 매점의 사장, 경제가 안좋다는 기성언론의 기사에 맞춰 대학가 주변 밥집과 술집을 돌아다니며 체감하는 경제 경색, 프로야구 인기에 힘입은 야구 동아리, 이어 순차적으로 소개하는 동아리들. 정월 대보름에 맞춰 부럼 깨고 찰밥먹는 레시피… 등등. 이른바 ‘달력식 기획’을 쓰면 아이템은 충분하지만 몸이 한 개라 그러지 못했다.
나는 후배들이 소모되지 않기를 바란다. 달력식 일정을 보고도 나는 이것보다 더 잘 쓸거야! 라고 하면 상관 없지만, 이게 왜 필요해? 라고 생각하는건 멈청함에 가깝다고 본다.
현생을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다음 기사 기획을 위한 일정 확인, 충분한 수면, 취재원이랍시고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 선배들. 그리고 교수까지. 그들이 이 몇 가지를 챙겨 조금이나마 현생에 가깝게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국부장단은 이번이 마지막 임기일 것이다. 곧 취업전선에 가야한다. 짐을 조금은 내려 놔도 되지 않을까.
또 돌고돌아 대학언론의 위기다. 늘 입모아 바라지만, 이번 스태프들은 소모되지 않길 바란다. 무운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