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9월 발행한 회대알리 19호 지면에 수록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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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업계에서 사용하던 용어, 사회적 차별로 의미 확대
배리어프리는 건축 업계에서 장벽을 허문다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배리어프리의 ‘장벽’은 교통약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물리적 차별의 의미로 확대됐다. 배리어프리, 즉 장벽을 허물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동, 문화 등의 ‘접근성’이 얼마나 보장되었는지에 주목하고 이를 확대해야 한다.
흔히 접근성을 떠올릴 때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권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접근성은 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민으로서 알 권리,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의미하는 정보 접근성은 웹과 모바일을 이용하는 누구나 차별 없이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으로 음성, 자막, 점자, 이미지 등을 이용해 획득할 수 있다.
한국의 정보 접근성
한국은 2024년 9월 UN이 발표한 ‘전자정부 발전 지수’에서 4위를 기록했다. 전자정부 발전 지수는 온라인 서비스 제공과 통신 연결성 및 인적 역량의 세 가지 측면을 측정하며 국가가 정보 기술을 사용해 국민이 웹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반영하는 수치다. 전자정부 개발 지수가 높을수록 정보를 전자적으로 체계화하고 행정 업무를 신속히 수행할 수 있으며, 국민은 국가가 제공하는 정보에 접근하기 수월하다.
한국은 2010년부터 2024년까지 세 번의 1위를 포함해 매년 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소유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정보 접근성을 기대할 수 있는 체계와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장애인 접근성 강화를 위한 박물관·미술관 가이드라인 방향 수립 연구’를 통해 한국의 정보 접근성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전시 안내 보조 및 안내 서비스 제공 여부에 따르면, 물리적 접근성 강화에 해당하는 ‘장애인 이동을 위한 이동수단 제공’은 가장 보편적인 서비스로 77.4%를 기록했다. 그러나 정보 접근성에 해당하는 ‘전시 안내 점자책자’는 그의 1/4도 되지 않는 17.4% 수준을 보였다. 이는 같은 책자 서비스인 ‘영어를 제외한 다국어 리플렛’과 비교했을 때도 절반 수준이다. 이외에도 ‘수화 안내 영상 서비스’ 9.6%, ‘보청 시스템’ 6.1%, ‘약시를 위한 큰 글씨 형태 안내 책자’는 2.6%에 불과해 미흡한 정보 접근성을 나타냈다.
온라인 홈페이지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같은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을 위한 별도 홈페이지 개설여부 문항에는 96.3%가 ‘별도 페이지 없음’이라고 응답했다. 홈페이지 설계 시 웹접근성 고려 여부에 대해서도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아니오’가 71.3%를 기록했다. 이는 장애인이 홈페이지에 방문할 때 원하는 정보를 얻기 힘들뿐 아니라, 사실상 접근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 접근성 확대의 시작은 격차 해소
반면, 2024년 ‘전자정부 발전 지수’에서 1위를 기록한 덴마크는 다르다. 덴마크가 전자정부 발전 지수에서 1위를 기록한 점은 단순히 디지털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덴마크는 디지털이 삶에 도움 되기 위해, 우선 동등한 디지털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가치 아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둔다.
실제로 덴마크는 불평등 감소에 있어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준을 보인다. 인도주의 구호단체 옥스팜은 빈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헌신 지수를 측정해 지난 2019년 ‘불평등 감소에 대한 약속 지수’를 발표했다. 2018년의 세금과 노동 분야를 모두 포함한 이 지수에서 덴마크는 157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접근성 역시 이처럼 격차 해소를 기반으로 확대해 간다. 장애인과 노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학습과 교육 등을 실시하고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복지 체계 구축해 정보 접근성의 격차를 해소한 결과, 덴마크는 미국 비영리단체 사회발전조사기구가 2020년 발표한 ‘사회발전지수’ 중 정보 통신 접근성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정보 접근성 확대가 격차를 해소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에서도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제도를 찾을 수 있다.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장애인이 전자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이용할 때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정보통신접근성 심사를 통한 인증 제도를 운영한다. 이는 장애인과 고령자 등 정보접근약자가 웹사이트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웹사이트에 정보통신접근성을 심사해 품질 마크를 부여하는 인증 제도이다. 인증 심사 기준 항목으로는 ‘적절한 대체 텍스트 제공’, ‘자막 제공’, ‘깜빡임과 번쩍임 사용 제한’ 등이 있다. 모바일 앱의 경우 Play Store와 App Store 등의 마켓에서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대상으로 심사를 통해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이 인증 마크를 받기 위한 심사는 색깔이 명확하지 않거나 표와 문서가 복잡하게 구성된 경우와 같은 웹 접근성과 관련된 상세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인증 마크를 받은 웹 사이트는 사용자의 이용률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배리어프리를 위한 배리어컨셔스
접근성을 강화하고 보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접근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교통약자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장벽’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배리어컨셔스’라고 한다. 좌석까지 계단으로 걸어서 이동하는 영화관, 서 있는 상태로 이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 빠르고 간편한 사전 예약 제도. 모두 일상에서 편리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장애인과 교통약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영화를 보기 위해 들어간 극장에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가 없는 경우, 키오스크 사용에 있어 어린이와 노인이 화면에 손이 닿지 않거나 화면 조작이 불편한 경우,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 갈 때 현장 결제 없이 온라인 사전 예약만 가능한 경우와 같이 비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편리한 제도가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모두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인식하기’ 작업은 일상에 만연한 비장애인 중심 체계를 돌아보게 한다.
‘듣는 기사’, 회대알리가 시작하는 배리어컨셔스
그동안 회대알리가 발행해 왔던 기사의 접근성을 되돌아봤다. 차별과 혐오 없는, 인권친화적인 언론의 가치를 내세워 활동해 왔지만 어떤 이에게는 기사가 닿을 수조차 없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평등을 지향했으나 모순적으로 차별을 이어 왔음을 깨달았다.
지면을 발행할 때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게 적용한 글자의 크기와 다양한 색상이 가득한 썸네일이 누군가에게는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 수많은 안일함이 눈에 들어왔다. 비로소 배리어컨셔스의 시작이다.
접근성 매니저로 일하는 이충현 문화기획자는 “완전한 배리어프리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접근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말이다. 완전하고 완벽한 배리어프리를 목표에 두기보다, 우리의 위치에서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배리어컨셔스를 시작하고자 한다. 회대알리의 그 첫 번째 시도로 ‘듣는 기사’가 있다.
글, 취재, 디자인 = 이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