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진의 국제오버룩]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네

  • 등록 2025.09.09 23: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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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LG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이 한국인 300여 명을 “체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체포했다. 우리 정부가 신속히 대응해 문제를 풀어냈지만,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이번 일이 한국 기업이 비자 문제를 우회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에 따라 공장을 세우러 갔음에도, 정작 취업비자가 제때 발급되지 않아 기업들이 임시로 ESTA(여행비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투자를 독려하면서도, 그 투자에 필요한 비자를 늦게 내주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책의 충돌이며, 명백한 아이러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과 훌륭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전문가를 불러들여 우리 인력을 배터리, 컴퓨터, 선박 건조 등 복잡한 작업에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과 달리 취업비자는 늦게 나오고, 우리 국민은 이미 체포됐다. 교육과 투자가 필요하다면 비자를 신속히 내주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문제를 일축하는 태도는 한국 국민에게 분노를 살 수밖에 없다.


투자를 하라 해놓고, 투자를 막으면 어쩌란 말인가. 미국이 말하는 ‘훈련’은 결국 동맹국의 기술을 흡수하겠다는 속내로 읽힌다. 이는 단순한 기술 유출을 넘어, 한국 제조업과 첨단 산업의 안보 기반을 뒤흔드는 문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 5일 미국이 주한미군 재배치를 시사하고 국가방위전략(NDS)에서 중국·러시아 억제보다 자국 임무를 우선시한다고 밝힌 것이다. 북·중·러 협력이 강화되는 지금, 미국의 고립주의적 행보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자유 진영의 안보에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


결국 미국이 질서 유지의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던 팍스 아메리카나는 막을 내린다. 최근 한일 공조가 강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말에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는 속담이 있다. 이제 한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안보와 기술을 지키는 길, 곧 자강(自强)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우진 편집국장


편집인: 김단비 부편집국장 (국어국문 21)
작성인: 조우진 편집국장 (국제 21)

조우진 기자 nicecwj11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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