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용맹함을 상징하는 이름” 역사 속 역대 레오 교황들의 이야기

  • 등록 2025.05.15 11: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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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렌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는 자신의 교황 즉위명을 “레오 14세”로 결정했다. 특히 레오 14세는 전임 교황의 프란치스코의 기존 정책을 이어 나가는 동시에 전통적인 교황 복장을 착용하고 사도궁에 거주하기로 하는 등 가톨릭의 전통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전임 교황 중 “레오”라는 즉위명을 선택했던 레오 13세의 유산과 철학인 사회 정의와 평화에 대해 첫 연설에서 강조함으로써 레오 13세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레오(Leo)”는 라틴어로 “사자”를 뜻한다. 힘과 용맹함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며 고대 로마부터 왕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 단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 혹은 복음사가인 마르코 등으로 해석한다.

 

 

역사 속 “레오”라는 교황 즉위명을 사용한 최초의 교황은 ‘레오 1세(재위기간 440-461)’이다. 레오 1세는 ‘성 레오 대교황’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그는 교황권 강화와 로마 교구의 주교 권한에 대해서 정립한 인물로 특히 칼케돈 공의회에서 중요한 신학적 문서인 ‘레오의 톰’을 제출하며 그리스도론 확립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후 레오라는 교황명을 사용한 레오 2세 교황(재위기간 682-683)은 짧은 재위기간동안 ‘콘스탄티노플 3차 공의회(680-681)’ 결정을 승인하며 단의설(Monothelitism,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만, 의지는 하나(신성)만을 가지고 있다는 신학설. 즉 예수의 인간 의지를 부정하고 신성만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주장.)에 대해 이단으로 규정했다.

 

 

레오 3세 교황(재위 기간 795-816)는 교황과 황제의 협력관계를 구축했으며 교황 레오 4세(재위 기간 847-855)는 성 베드로 대성당 재건을 주도했다. 레오 9세 교황(재위 기간 1049-1054)은 교회 개혁의 선구자로 평가되며 당시 가톨릭의 큰 교회적 문제인 성직매매에 대해서 금지했으며 사제의 결혼 금지를 규정했다. 특히 동방 정교회와의 분열인 동서 교회 대분열 당시 교황으로서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 총대주교인 미카엘 1세와 상호 파문을 진행했었다.

 

 

논란이 있던 교황도 있었다. 레오 10세 교황(재위 기간 1513-1521)은 당시 가톨릭의 사회적 문제인 면죄부 판매를 방관하여 이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레오 13세 교황(재위 기간 1878-1903)은 근대 교황의 대표자로 외교적이며 개방적 입장을 취한 교황이다. 레오 13세가 발표한 대표 회칙으로는 “Rerum Novarum(새로운 사태)”로 가톨릭 사회교리의 시초이자 노동자와 노동에 대한 권리를 제시한 최초의 교황이다. 학문과 과학에 매우 우호적이었으며 이에 일환으로 교황청 도서관을 정비했다.


한편 레오 13세의 정책과 레오 14세의 연관성에 대해 가톨릭평화방송은 “레오 14세 교황이 ‘레오’라는 교황명을 선택한 것은 레오 13세 교황이 134년 전 지적한 사회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면”서 “미해결 과제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에언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김동현 기자(mvp2450@naver.com)


편집인: 조우진 편집국장 (국제 21)
담당 기자: 김동현 기자 (신학 22)

 


 

 

김동현 기자 mvp24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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