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돌봄은 책임, 국가와 지역사회의 역할을 묻다

  • 등록 2025.11.19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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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찬 사회민주당 청년위원회(준) 운영위원

지난 2021년, 외동아들인 A씨(당시 22세)는 대학을 휴학한 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8개월간 홀로 간병했다. 약 8개월간 입원치료로 청구된 병원비만 1,500만 원, 결국 월세가 밀리고 전화와 가스, 인터넷이 차례차례 끊겼다. 더 이상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를 테니, 그전에는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힘겨운 간병과 경제적 어려움에 지칠 대로 지친 A씨는 결국 아버지를 방 안에 방치했고, 아버지는 끝내 숨졌다. 2021년 영케어러(Young Carer) 문제로 국가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간병청년 강도영(가명) 사건'이다.

 

현재 강도영 씨와 같은 영케어러는 정부 추산 약 18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기준 1일 평균 간병비는 12만7천원, 한 달이면 381만원. 연봉 5,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의 실수령액 전액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무려 18만 명의 청년들이 홀로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설령 운 좋게 돌봄을 함께할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24시간 계속되는 돌봄에 지쳐가고, 그로 인해 학교, 직장 등의 일상 곳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는 수많은 가족들이 돌봄 앞에서 좌절하게 만든다. 실제 간병 경험자의 61.2%가 간병 부담으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한 바 있다.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위험이 되는 돌봄 공백 해소를 위한 대응을 사회・국가적으로 제도화했다. 영국은 1990년 커뮤니티케어법을 제정하여 지방정부에 지역 내 포괄적 케어서비스 제공 책임을 부여했고, 일본은 2013년부터 '병원・시설에서 지역・재택으로'를 목표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도입했다. 스웨덴은 1950년대 재가 돌봄서비스를 도입하고, 2001년 사회서비스법을 개정해 지역의 책임과 재량을 확대하는 등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따라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대폭 강화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이제껏 돌봄 제공의 책임을 민간 시설에 위임하고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 결과, 87%의 노인들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하지만, 간병 부담을 개인과 가정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요양 시설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마저도 비용 문제로 열악한 시설을 선택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강도영 씨가 혼자 감당해야 했던 8개월, 그가 내려야 했던 참혹한 선택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었다. 돌봄을 개인과 그 가정에 떠넘긴 국가의 실패였다. 18만 명 영케어러를 비롯한 돌봄 가정의 일상을 복원하고, 강도영 씨와 같은 안타까운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돌봄 체계의 전면적 확대가 필요하다.

 

돌봄은 그 필요에 따라 어떤 내용을, 어디를 통해, 어떻게 제공받을지 달라지기 때문에 매우 폭 넓은 다양성을 띠는 서비스다. 단적인 예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의 돌봄 모델이 전북특별자치도 남원과 같은 곳에 적용될 수 없다. 앞서 살펴본 영국, 일본, 스웨덴이 지방정부에 돌봄의 책임과 권한을 대폭 부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돌봄 확대의 출발점은 강도영 씨와 같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가장 가까운 곳,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 돌봄의 확대는 당장 지원이 필요한 가정뿐만 아니라, 지역과 청년에게도 새로운 활력과 기회가 될 수 있다. 국가가 필수 일자리의 고용주로 역할하는 국가일자리보장모델을 활용해 지역의 돌봄인력을 대폭 확충한다면, 강도영 씨처럼 혼자 간병을 떠안아야 했던 청년들에게는 실질적 지원을, 청년들에게는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를 동시에 제공하여 개인과 지역 전체의 성장 동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제 일본 나가야마는 지역 돌봄 체계를 확대하는 과정이 지역 재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역 돌봄 확대는 인력 확충 외에도 지역의료인력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화, 지역 보건·의료체계 확립 등 돌봄까지 이어지는 통합적 지원을 위해 보다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맞아 각종 지역 공약들이 준비되는 지금, 정치권은 '돌봄'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강도영 이후 대한민국, ‘돌봄’에 대한 정치의 책임있는 자세로,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공백 없는 돌봄'을 향한 지역의 첫걸음으로 만들길 바란다.

 

 

양윤찬 사회민주당 청년위원회(준) 운영위원(99nahcnooy@gmail.com)

대학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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