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피니언] ‘갓생’으로 살아남기, 불안의 굴레 속 대학생들

  • 등록 2025.11.12 23: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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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고용률 18개월 연속 하락세... "찬바람"
'갓생', 불안한 사회 속 청년의 방어기제로

 

 

해도 뜨지 않은 오전 6시.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원망스럽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커피를 한 잔 챙긴 뒤 도서관으로 향한다. 다음 주말이면 자격증 시험이 있다. 서울 4년제 대학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A씨, 이른바 ‘갓생러’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수업을 마친 오후 3시, A씨는 곧장 강남역으로 향한다. 서포터즈 회의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단정히 옷을 차려입는 걸 잊지 않았다. 잠시 후, 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퇴근길 교통체증을 뚫고 아르바이트 중인 음식점으로 향했다. 내일 정오까지 제출해야 하는 팀플 과제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말했다.

 

"쉴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예요. 대부분 이동 시간에 잠깐씩 쉬어요.”

 

겉으로 보면 스펙을 착실히 쌓은 하루를 보낸 A씨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다들 열심히 살잖아요. 인스타그램 보면 토익 점수는 물론이고, 대외활동 합격 소식이랑, 공모전 수상 소식까지 이것저것 올라와요. 나만 가만히 있으면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국무조정실이 올해 3월 발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9세~34세 청년 약 1만5000명 중 32.2%가 번아웃(소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 10명 중 6명은 “심리적 피로감으로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호소했다. 불안정한 청년 채용 시장의 현실이 이러한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청년 구직자 49.6%가 “취업 성공 여부에 대한 불안감”을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이러한 불안감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의 고용률은 지난 10월 기준 44.6%로, 전월 대비 1.0%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청년 고용률은 18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뚜렷한 감소 흐름을 보인다. 전체 고용률이 소폭 상승하며 고용시장이 전반적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청년층에서만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미숙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은 “경력직 채용 확대와 수시 채용 확산이 젊은 구직자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이 느끼는 현실적 압박감도 크다. A씨는 “요즘은 신입이라도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하니까요. 인턴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결국 인턴을 하기 위한 인턴 준비를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원하는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가 되기 위해 학업과 대외활동, 자격증, 아르바이트 등 거의 모든 시간을 스펙 관리에 쏟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업 인사 담당자의 78.9%가 “인턴 경험이 있는 지원자를 우대한다”고 밝혔다. 일부 기업의 인턴 경쟁률은 100:1을 넘어서며, 최근에는 ‘금턴(금보다 귀한 인턴 기회)’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는 "하루라도 계획을 안 세우거나 투두리스트를 완수하지 못하면 허무해요. ‘이 시간에 이걸 끝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스스로 가치가 없다는 생각도 들 때가 많아요”라고 덧붙였다. A씨의 계획표는 앞으로의 일정으로 빼곡했다. “다음 주 자격증 시험이 끝나면 대외활동 프로젝트가 있어요. 그러고 나면 시험 기간이에요. 다 해야죠. 다들 하니까요.” 

 

'갓생'은 더 이상 자율적인 자기계발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한 사회 속에서 청년이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방어기제이자, 동시에 그들을 가장 빠르게 소진시키는 구조로서 작동한다. 이 소진의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는 청년의 피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이루원 기자 (cruwxn1@gmail.com)

이루원 기자 cruwxn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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