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서 건조하디 건조한 '어느 회사 무슨 직책 누구와 전문성 넘쳐 보이는 자신만만한 사진'이 아니라 '나를 소개하며'라 이름을 붙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선 그 참사를 기억하는 나 자신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내가 사건을 어떻게 접했는지는 모르겠다. 학교에서인지 집에서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인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보통 수학여행을 간다. 엄마, 아빠 손을 벗어난 첫 여행이란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의 봄은 그래서 무척이나 떠들썩하다. 경주? 서울? 제주도? 어디가 되든 친구들과 손 잡고 놀러가는게 기쁠 시간이다.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서인지,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나는 그 순간 만큼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우리가 수학여행을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무색하게 대부분의 학생들이 바다 아래로 잠겨버렸다는 점. 어렴풋이 그저 시끄러운 텔레비전 앞만 멍하니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우리집도 며칠 내내 뉴스만 틀어놓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수학여행을 갔다. 그 당시에는 가는 것 자체에 기뻤지만 많은 학교들이 수학여행을 취소하는 상황이었다. 4월 16일로부터 바로 며칠 뒤가 우리 수학여행이었기 때문에 위약금, 수수료… 취소할 수 없었던 학교와 어른들의 사정 아니었을까? 경주로 가는 관광버스를 타고 꽉 채워진 5대의 버스가 동네를 떠난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 붙는 경찰차 몇 대. 경주에 도착하고 나선 경찰차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분명 어디 고속도로를 타기 전에 돌아갔겠지. 그리고 여행은 즐거웠다. 기억하는 건 에밀레 종이 왜 에밀레 종이라 불리는지 일뿐.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세월호도 수학여행의 기억도 내 머릿 속에서 희미해졌다. 그리고 12살의 나는 그만큼을 더 먹은 24살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쉬지도 않고 4년을 다니다 졸업했다.
원하는 목표가 있어 대학원에 바로 입학했는데 얼떨결에 취업도 되버렸다. 그리고 현장에서 세월호 기록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24살의 기하늘은 다시 12살의 기하늘이 되어버린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다. 2014년의 4월 16일을 마주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안 슬픈 사람있음 나와보라 그래 치기어린 제목을 붙였다.
그래 난 확신한다. 세월호 기록을 보고 안 슬픈 사람이 있을까? 사이코패스는 제외하겠다. 세월호 참사의 기록을 다시 마주하게 된 이유는 4.16기억저장소와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기억저장소는 홈페이지 리뉴얼을 준비하고 있었고 내가 소속된 회사는 그 일을 담당하고 있었고, 나는 그 회사에 취업이 됐다. 정말 많은 기록을 봤다. 건수도 많지만 유형도 다양했다.
세월호 기록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수학여행을 가다 사고가 일어났으니 수학여행에 들고 간 짐들. 단원고 학생들이었으니 학생들이 생활하던 교실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그 짐과 교실에는 무수히 많은 유형의 기록이 있다. 옷, 신발, 화장품, 샴푸, 린스, 과자, 음료, 필통, 교과서, 문제집, 가정통신문 ... 이 기록들을 상상하는 당신은 이럴지도 모른다. "뭐가 슬픈데? 난 눈물 안나는데?"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 부모들은 진도로 모였다. 사고 현장과 가장 가까운 팽목항에 학생들이 구조되거나 수습되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진도로 내려가는 차 안, 학생들이 돌아오는 팽목항에서 부모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미디어로 마주했던 부모들의 모습은 아주 일부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기다리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내 아이의 소식을 듣고 팽목항으로 달려가는 동안에도, 팽목항에서 돌아온 내 아이를 마주하는 동안에도, 병원으로 옮겨져 가족들이 아이를 마주하는 동안에도,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동안에도, 집으로 돌아와 텅 빈 아이의 방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한 해, 두 해 흘러 아이의 생일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명절마다 푸짐한 상 위 빈자리를 바라보는 동안에도,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솟구쳤을지는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하겠다.
4.16기억저장소(www.416memory.org)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수많은 기록들이 모여있다. 홈페이지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대문에 2학년 1반 전경이 보이는 것처럼 학생들의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님 이야기를 하다 왜 기억저장소 이야기냐는 들리지 않는 질문에 답해보자면, 이곳엔 참사 이후 부모들의 기록들도 보존되어 있다. 내가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그 모습들을 기록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2018년에는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여러 편지들이 있지만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편지는 '도언이, 나 여기 있어요'(https://readmore.do/416memory-41601003267)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쓴 편지에 '좋아한다'는 감상을 붙이는 게 누구는 어리석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정말 이 편지를 좋아한다.
아주 어린 도언이를 잃어버린 엄마, '딩동댕'하며 방송으로 울리는 내 아이의 이름. 그리고 다시 어린 도언이를 잃어버린 엄마, 수습자 명단에 올라온 내 아이의 이름. 이 편지에서 나는 12번의 엄마를 봤다. 쇼핑몰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은 엄마. 바다 아래서 아이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은 엄마. 4월에 벚꽃 아래서 아이와 사진을 찍는 엄마. 5월에 튤립축제를 가고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받는 엄마. 6월에 크루즈 위에서 아이와 바다를 바라보는 엄마. 7월에 아이와 나란히 앉아 네일을 받는 엄마. 8월에 가족들과 물놀이를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9월에 아이와 손 잡고 영화관에 간 엄마. 10월에 단풍 아래서 아이와 알록달록 단풍잎을 구경하는 엄마. 11월에 따뜻한 휴양지에서 까만 선글라스 너머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12월에 친구들, 가족들과 안산이 떠나가라 생일을 즐기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그리고, 2018년 2월에 편지를 쓰며 아이를 다시 기억하는 엄마.
참사에는 이 세상을 떠나간 이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들이 있다는 걸, 그 사람들이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란 걸 나는 엄마의 편지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의 기억이 기록으로 남아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 기록을 보며 12살의 나를 다시 만났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이를. 어쩌면 기억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 남겨놓은 기록 앞에 멈춰 서고,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다시 한 번 그 일을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4년 4월 16일의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지금, 2026년의 당신은 2014년 4월 16일을 어떻게 기억하는 사람인가.
기하늘 (sky4110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