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기사는 '외대알리 지면 41호: 틈'에 실린 기사로, 2026년 8월에 작성되었습니다.
“학생회가 대학 생활에 필요한 존재인 건 맞아요. 하지만 그게 제 취업이나 진로에 당장 도움이 되진 않잖아요.”
서울 소재 한 대학에 재학 중인 A씨는 학생회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과 행사나 성적 산출 방식 개편 등 학생회가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취업난 속에 당장 학점과 스펙을 챙기기도 벅찬 현실에서 시간과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는 학생회 활동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연말 대학가 선거철만 되면 캠퍼스 곳곳을 수놓던 화려한 선거 포스터와 유세의 함성은 이제 옛말이 됐다. 학생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대학 문화의 중심에 섰던 학생회는 이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냉혹한 평가 앞에 설 자리가 없다.
10곳 중 5곳은 ‘후보 없음’… 엇갈리는 필요와 참여
학생 사회의 위기는 특정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치로 드러난 현실은 캠퍼스 전반에 걸친 '자치 붕괴'를 명확히 보여준다. 2025년 기준 서울 소재 4년제 종합대학 33개교 중 총학생회가 정상적으로 구성된 곳은 15개교(45.5%)에 불과했다.
절반이 넘는 18개교(54.5%)는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거나 투표율 미달로 총학생회를 꾸리지 못했다. 올해(2026년) 상황은 더욱 뼈아프다. 서울대·고려대·서울시립대·숙명여대 등 주요 대학에서 줄줄이 ‘후보자 없음’으로 선거가 무산됐다. 서울과기대와 한양대는 후보가 출마했음에도 각각 개표 기준과 찬성률 기준 미달로 선거가 엎어졌다.
구체적인 대학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체감할 수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이하 ‘한국외대’)의 경우, 2024년 50.79%였던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이 2025년 34.21%로 급락하더니, 2026년 재선거에서는 31.58%까지 곤두박질쳤다. 불과 2년 만에 약 19.21%p가 하락한 것이다.
총학생회뿐만이 아니다. 단과대 단위의 자치 공백은 이미 일상화됐다. 한국외대는 2024년 영어대학과 사범대학이, 2026년에는 사회과학대학이 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됐다. 심지어 2025년 말에는 총학생회 선거 후보 등록이 무산되어 제59대 총학생회의 임기가 비정상적으로 연장되다가 올해 4월에야 재선거를 통해 제60대 총학생회가 출범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대위 체제는 정상 학생회에 비해 정당성과 대표성 측면에서 학교 본부와의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등록금 인상, 총장선출등의 의제에 학생사회가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되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다만, 학생들이 학생회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기자가 만난 학생들은 오히려 학생회의 역할과 필요성 자체는 강하게 긍정했다. 재학생 B씨는 “평상시에도 학생회가 학우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추진한다고 느꼈지만 특히 이번 성적 산출 방식 개편 과정에서 학생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했다”고 말했다. 대학 축제나 단과대 행사처럼 학생회가 주관하는 행사 역시 학생들의 대학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참여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학생회 참여를 꺼리는 원인이 단순히 개인주의나 무관심 때문은 아니라고 말했다. 극심한 취업 경쟁 속에서 한정된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청년들의 냉정한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학생회 간부 경력이 이력서에 쓸 수 있는 훌륭한 리더십 스펙으로 통용됐지만 철저히 직무 적합성을 따지는 최근 채용 시장에서는 매력을 잃었다. 학교 방송국에서 활동하며 PD를 꿈꾼다는 재학생 C씨는 입학 후 수업 외 시간 대부분을 방송국에 투자했다. 그는 “학생회의 복지나 행사 운영 업무는 제 진로 방향과 결이 전혀 다르다”며 “실무 경험을 최우선으로 치는 요즘 업계에서는 방송국에서의 실제 기획·제작 경험만이 경력으로 인정받는다고 판단했다”고 잘라 말했다. 학생회 활동이 학생으로서의 낭만과 의미를 줄지는 몰라도 진로와 직결된 실질적 준비 과정은 될 수 없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남은 자들… “학생회 부활의 열쇠는 가치 증명”
그럼에도 학생회에 남은 자들이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캠퍼스에 남아 학생 사회를 이루어 나간다. 이들은 학생회 활동이 주는 가치가 단순히 효율성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시아언어문화대학 학생회에서 생활복지부 국장으로 활동한 박수완씨는 외대 인근 상권 72곳과 단과대 최대 규모의 제휴(할인,추가 메뉴 제공 등)를 맺는 성과를 냈다. 그는 “1학년 때부터 학생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모종의 봉사 정신이 있었다”며 “학우들이 ‘여기 다녀왔다’, ‘덕분에 잘 이용했다’고 직접 말해줄 때, 내가 맺은 제휴가 학생들의 일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는 체감 덕분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친목 도모를 위해 처음 학생회에 지원했다는 E씨 역시 “중국인 유학생과 한국인 학생들이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참가했던 학우가 ‘단순히 언어 실력이 느는 걸 떠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타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해주어 큰 울림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학생회를 안 한다고 갑자기 쉴 틈이 생기거나 학점이 크게 오르는 것도 아니다. 고민된다면 한 번쯤은 지원해 대학 생활을 더 의미 있게 채워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에 맞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합리적인 업무 분담의 부재가 대표적이다. 학생회에 몸담았던 D씨는 “MT나 새내기 배움터(새터)를 준비할 때 짐을 옮기는 일처럼 육체노동이 많이 필요한 단순 업무에 오히려 인원이 적게 배치되는 등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공정함과 효율을 중시하는 학생들은 과거 관행처럼 굳어진 주먹구구식 업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로 가중된 심리적 피로감도 문제다. 방송국원 C씨는 “요즘 익명 커뮤니티나 SNS를 보면 학생회 관련 논란이나 자극적인 문제 제기가 너무 잦다”며 “학생회가 책임감을 갖고, 학우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혜택과 공정한 업무 처리 결과를 꾸준히 보여줘야만 돌아선 관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가성비’와 ‘각자도생’의 시대, 사라지고 있는 학생사회 문제를 학생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치열하게 스펙을 쌓아도 이들에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의 학생회는 학생들에게 사치다. 낭만과 열정을 제공하겠다는 허황된 유혹은 더 이상 그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보다 학생회가 그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지 따져볼 때다.
김서연 기자 (kimsyeony25@gmail.com)
박대현 기자 (pdaehyun0318@naver.com)
박승현 기자 (parksenal@donga.com)
송주하 기자 (juha.song@icloud.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