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일본 오키나와 출신 청년 사키하마 소라네 씨(崎浜空音·25)가 도쿄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게 된 이유다. 그는 게이오대학 로스쿨 1학년으로, 시민단체 'WE WANT OUR FUTURE'에서 활동하며 평화헌법 9조 개정 반대 집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다루는 협력 단체(What is SOFA?)를 꾸려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달 6월 12일, 그를 영상 통화로 만났다.
왜 한 사람의 죽음에 오키나와 전체가 분노 했을까
사키하마 씨의 이야기는 2016년 4월 28일, 그가 15살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우루마시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가 미군기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오키나와 주민 전체가 분노했다.
“왜 한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오키나와 전체가 분노하는 걸까?” 어린 사키하마 씨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현재 미일 주둔군지위협정(SOFA) 아래, 일본 국토 면적의 약 0.6%에 불과한 오키나와현에는 전국 재일 미군 전용 시설의 약 70.3%가 집중돼 있다. 여기에 오키나와현에만 31개의 미군 전용 시설이 있다.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있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는 이곳에서 미군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많다는 것도 그 무렵 알게 됐다고 했다.
조부모로부터 전해 들은 오키나와 전쟁의 기억이 더해졌다. “가족들이 전쟁을 경험했다 보니 두려움이 커요.” 사키하마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식민지 문제를 비롯해 전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전쟁이 가능하게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싶어요.” 이런 반감과 두려움이 오늘날 그가 목소리를 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동료가 없다”는 두려움에서 “혼자가 아니다”로
(타시로 씨에게 WE WANT OUR FUTURE’는 어떤 단체인지 묻자) “이 단체는 리더가 없어요. 넓은 모임의 개념이에요. 특히 일본 미디어가 데모나 사회 운동 같은 걸 할 때 젊은 사람이나 여성이 했다는 등 개인적인 배경에 관심이 매우 많아요. 그래서 ‘대표’라고 했을 때 개인이 주목받아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어, 대표 없이 모두 ‘일원’으로서 활동 중이에요.”
“저희는 그냥 살았다면 전혀 관계되지 않았을 사람이에요. 정치에 관심이 있고, 사회 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형성된 동료죠.” 사키하마 씨는 타시로 씨 덕분에 실제로 거리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도쿄에서 데모라고 하면 보통 나이 든 사람들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젊은 타시로씨가 나서는 모습에 용기를 얻었어요.” 타시로 씨의 권유로 처음 연설대에 서서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첫 데모의 기억은 또렷했다. “밤이라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다들 눈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저를 바라봐주는 그 장면이 너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오키나와에 있을 때는 이 길이 맞는 건지, 자신이 맞게 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연설을 하고 사람들이 말을 걸어주면서,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얻었어요.”
사키하마씨의 연설에 늘 응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내용을 SNS에 올렸을 때 친구에게 비난 섞인 문자를 받기도 했어요. ‘굳이 왜 하냐’는 여론이 많았어요. 하지만 꾸준히 목소리를 내다보니, 그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곁에 남더라고요.”
정치적 생각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사키하마 씨는 일본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관한 질문에 신중하게 답했다. “대체로 무관심한 것은 맞다”면서도, 그 배경에는 아르바이트와 학업 등 당장의 삶에 쫓기는 현실이 있다고 짚었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강한 주변 의식도 한몫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개인이 눈에 띄는 정치적 행동을 하면 주변에서 억제하고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있어요.” 본심은 정치에 관심이 있어도 그것을 표출하기 어려운 사회적 압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정 찬반이 세대의 전쟁 경험에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두려움이 있어요. 찬성인 사람들은 보통 전쟁에 대해 무지하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9조 개정으로 무기를 소유하고 전쟁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에 대한 경각심 자체가 부족한 이들이 찬성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역사는 100년마다 반복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그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저물고 그것을 모르는 세대가 그 자리를 채우는 지금이 다시 역사가 반복되는 입구라고 봤다. “요즘 세상에 무슨 전쟁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이야말로 경각심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죠.”
(개정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묻자) “전쟁에 반대하기 때문이에요.”
전쟁 가능성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9조가 한 발을 내리는 것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게 없어지면 전쟁으로부터 지켜줄 방패가 사라져요.”
“국민투표 전에 무조건 막아야 한다”
지난해 10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취임 이후, 자민당이 올해 2월 총선에서 465석 중 316석을 얻으며 개헌 발의선(310석)을 단독으로 넘어서자 개헌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여론은 엇갈린다. 개헌 찬성이 수치상으로는 우세하지만, "서두를 필요 없다"는 응답이 62%, 9조 개정 반대는 63~80%에 달한다.
헌법 개정은 국회 발의를 넘어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국민투표를 추진하려는 상황에 대해 사키하마 씨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투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하게 성립되지 않았고, 국민에게 충분한 지식이 전달되지 않은 상황이에요. 애초에 개헌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생각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표를 부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그는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의견이 하나로 취합된 다음에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긴급사태 조항 신설과 9조 명기 논의에는 완전히 반대한다고 못 박았다.
“정치인들이 과거와 같은 방식이 여전히 통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지금 시민들도 정치를 똑바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더욱 데모나 연설로 우리의 입장을 표현하는 게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1~2년 안에 개헌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시민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아베 때도 동일한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은 안됐다”며 “국민투표 전에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기 위해 시민들이 데모를 통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움직임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속한 작은 세계에 머물러 있지 마세요”
사키하마 씨의 문제의식은 오키나와와 일본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가 오키나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전체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처럼, 한 국가의 문제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겨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한 부분에 피해를 주면서 이뤄내는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에요.”
일본 정치권에 바라는 점을 묻자 그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언급한 ‘국민’에는 일본인만이 아니라 오키나와 주민, 성소수자, 외국인까지 포함된다. 현재 일본에서 심각해지고 있는 외국인 혐오 문제를 지적하며, 일본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방향으로 정치권이 변화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국 데모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일본에서도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는 인터뷰 당시, 6월 24일 프랑스 사형제도 반대 활동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라며 “본인이 속한 작은 세계에 머물러 있지 말고 다른 세계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사카하마 씨에게 평화의 의미를 묻자)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모두가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에요.”
그는 전쟁이 없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젠더 문제, 외국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으므로, 지금 “일본이 평화로운가”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라고 했다. 일상의 불안이 없는 사회, 앞으로 모든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사키하마씨가 그리는 평화다.
박주은 대학알리 기자 (jusilver.par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