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1 (화)

대학알리

학업과 간병 사이, 선택을 강요받는 대학생 간병청년

강의실 대신 병원으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영케어러’
학칙과 사회가 모른 척 넘어간 돌봄 노동의 무게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본관, 대기 의자에 앉은 청년들의 시선이 노트북 화면과 병실 문 사이를 오간다. 모니터에는 대학교 비대면 강의가 재생되지만 이들은 강의보다 환자 호출 벨 소리와 보호자 출입 통제에 더 자주 반응한다. 이처럼 전국의 수많은 대형 병원 복도는 가족이나 친지를 간병하기 위한 청년들, 이른바 ‘영케어러’들로 가득하다. 영케어러는 부모나 조부모 등 가족을 돌보는 34세 미만의 청년을 뜻한다.


'간병 지옥'이 삼켜버린 청춘의 궤적


대학생 조 씨(25)는 사고로 입원한 아버지와 지병 치료를 받는 어머니를 동시에 돌봤다. 다른 학생들이 학점 관리와 취업 스펙 쌓기에 분주할 때, 조 씨는 보호자 간이침대의 협소한 공간과 소음을 버티며 전공책을 읽고, 사이버 강의를 듣는 중에도 때마다 환자의 소변 통을 비워야 했다. 그는 “하려던 일과 인생 계획을 모조리 포기하고 간병에 뛰어들어야 했다”며 “준비할 시간도 없이 피보호자에서 가장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3년 넘게 이어진 간병 뒤 조 씨의 삶은 사뭇 바뀌게 됐다. 조 씨는 본래 체육계 진로를 꿈꾸고 있었으나 부모님의 간병을 시작하면서 더 이상 연습을 할 수 없게 됐다. 떨어진 성적과 이수하지 못한 학점으로 제때 졸업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대학생 이 씨(22)는 중학생 때부터 가족 간병을 이어왔다. 그는 수험부터 학교생활 적응까지 모든 부분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주변 친구들이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입시에 열중할 때, 이 씨는 부모님이 부탁하는 날이면 학교까지 빠지고 며칠 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다. 학교 수업과 학원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지속되는 병원비 압박으로 원서 접수비조차 부담스러웠다. 결국 이 씨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 단 한 개에 원서를 접수하고 합격했다.


“세상 모든 경험이 다 스펙이 된다던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간병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극복한 역경을 묻는 학교나 기업은 많지 않고, 만약 지원한다고 해도 그쪽에서 원하는 역경이 ‘간병’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한 번 써서 넣어 봤는데 일단 떨어지긴 했어요.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 상사분들은 안타깝게 여겨 주시긴 했지만 딱 그 정도뿐이었어요” 이 씨가 웃으며 말했다.


간신히 대학 문을 넘어선 뒤에도 이 씨의 어려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 씨는 간병 문제로 교수나 학사팀과 상담한 적이 없다고 했다. 수업과 간병 일정, 크게는 수술 일정이 겹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런 경우는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의 재량에만 기대야 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유가 있는 휴학으로 인정되지 않아 일반 휴학을 쓸 수밖에 없었다.


‘효자’라는 찬사 대신 ‘학생’으로 존재할 권리를

 


조 씨는 원해서 간병을 맡은 것이 아니었지만 가족의 요구로 그 역할을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하거나 간병인을 구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조 씨의 친지들은 입을 모아 조 양이 직접 간병하는 것이 ‘옳다‘고 압박했다. 조 씨가 학업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 씨는 이 기간의 심정을 “나 자신이 완전히 바뀐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는 절망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학교도 사회도 아픈 것을 상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픈 것을 애초에 없는 것 취급하고, 어려운 상황은 당연히 혼자 딛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대학 나오라고 ‘칼 들고 협박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간병은 개인 사정이고, 그걸 위해서는 대학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어느 순간 누군가 아프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에 항상 자신감이 떨어져요”

 

해외의 상황은 다르다. 영케어러 연구자 사울 베커(Saul Becker) 교수는 2021년 논문에서 각국의 지원 수준을 6단계로 구분했다. 여기서 'Class 1' 국가인 영국은 가족돌봄청년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영국의 대학입학지원 시스템 'UCAS'는 원서를 작성할 때부터 가족 돌봄의 책임을 기재하도록 한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에서는 학생 간병인 정책으로 수강신청 우선권과 간병 생활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반면 국내 대학의 관련 제도는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효자'라는 도덕적 평가와는 별개로, 학생의 권리를 보장할 장치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생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한 학사 운영과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유진 대학알리 기자 (gksdbwls1117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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