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1 (화)

대학알리

[학식 먹고 한 페이지] L의 운동화가 2026년 투표소로 걸어 들어온 이유

교과서에 박제된 39년 전 역사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흔들린 주권
'일상적 관심'으로 메우는 공백

| 편집자 주

 

6월은 흔히 과거를 '기억'하는 달로 여겨진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6월 민주항쟁은 교과서 속 빛바랜 흑백사진이자, 공기처럼 누리는 제도로 다가올 뿐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한 번의 사건으로 굳어지는 유물이 아니다. 당연하게 여긴 권리가 행정의 허점으로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왜 여전히 1987년의 한 짝의 운동화를 마주해야 할까. 

 

 

 

“꿈에서는 신발이 삶의 터전이나 의지할 대상을 상징한다고 하더군요. 부모나 배우자, 자식, 협력자를 의미하기도 한다고요.” - <L의 운동화> 중

 

신발은 대개 닳으면 버리는 소모품이다. 하지만 어떤 신발은 한 사람의 생애와 그 시대의 열망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증거물이 되기도 한다.

 

2000년대에 태어난 필자에게 있어 6월 민주항쟁은 그저 오랫동안 교과서 속 박제된 역사일 뿐이다. 높은 시험 점수를 받기 위해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한열'이라는 키워드를 외웠고, 빛바랜 흑백사진 속 군중을 보며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이미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었고, 그랬기에 6월은 그저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추모의 달에 불과했다.

 

 

<L의 운동화>는 1987년 6월,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의 발에 신겨 있던 한 켤레의 타이거 운동화를 따라간다. 세월이 흘러 복원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전시관에 서게 된 이 무뚝뚝한 사물은, 그날의 비명 가득했던 거리와 시민들의 두려움,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증언한다.


“피해자도, 증인도 없는 법정을 상상해 보았어요. 피해인석과 증인석은 비어 있고, 사건과 사건 번호와 배심원들과 재판장과 피의자만 있는 법정을요. 그럴 때 L의 운동화가 피해자이자 증인이 되어 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 <L의 운동화> 중

 

​1987년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선 이유는 거창한 이념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뽑고 싶다는 것, 국가 권력이 국민의 입을 틀어막지 않는 상식적인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 때문이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공기처럼 익숙한 권리지만, 당시에는 피를 흘려야만 겨우 쟁취할 수 있었던 기본권이었다.

 

 

39년이 흐른 지금, 그 권리는 얼마나 온전히 작동하고 있을까. 올해 6월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행정적 참사가 발생했다. 일부 지역 선거구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몇 시간씩 길게 대기하거나, 끝내 투표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책임져야 할 기본 절차를 준비 부족과 수요 예측 실패로 흔들린 셈이다.

 

1987년의 시대정신이 투표권의 '쟁취'였다면, 2026년의 책무는 그 권리가 단 한 표도 소외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박물관 유리창 뒤에 멈춰 서 있는 'L의 운동화'가 소설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로 걸어 들어온 이유도 다르지 않다. 과거의 희생으로 세워진 민주주의가 행정 편의주의와 시민의 무관심 속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그 현실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민주주의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관심을 거두는 순간 제도는 무뎌지고, 시스템이 방심하는 순간 행정은 부실해진다. 우리가 해마다 6월을 기념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들의 무게를 다시금 계량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L의 운동화>는 소설이라 보기 어렵다. 우리 일상 속 시스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묵묵히 관심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치열한 현재의 이야기다.

 


송연주 대학알리 기자(thdduswn8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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