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0 (수)

대학알리

[비하인드 더 숏] : 분열의 시대,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쏘아 올린 연대의 신호탄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리뷰

 *  리뷰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비장한 영웅이 아닌, '밀려난 자'들의 우주선

 

우리는 언제나 완벽하게 준비된 영웅들에게 열광해 왔다. <아마게돈>의 터프한 석유 시추 기술자들이나 <인터스텔라>의 사명감 넘치는 엘리트 조종사처럼, 인류를 구하는 이들은 대개 단단한 스펙과 흔들림 없는 목적지를 가진 이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극장가를 메운 앤디 위어 원작의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전혀 다른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자신이 왜 광활한 우주 한복판에 와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어설픈 중학교 과학 교사다. 그는 사명감에 불타 자원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가혹한 자리에 반강제로 '밀려난' 인물이다.

이 막막한 우주선의 풍경은 오늘날 20대의 현실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사회는 청춘들에게 흔들림 없는 목표와 완벽한 스펙을 요구하지만, 정작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내가 왜 이 치열한 경쟁의 궤도에 던져졌는가"에 대한 혼란이다. 그러나 영화는 말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기억을 잃은 채 고립된 우주선이라는 절망의 공간은 역설적으로 그레이스가 자신의 본질을 찾아내는 가장 의미 있는 좌표가 된다.

 

 

'불쉿 잡(Bullshit Jobs)'의 시대와 역설적 동력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그의 저서 <불쉿 잡(Bullshit Jobs)>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무기력증의 원인을 진단했다. 내가 오늘 당장 사라져도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갈 것이라는 느낌, 즉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로우 스테이크(Low-stakes)' 상태가 인간을 고립시키고 낙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취업 시장의 문턱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느끼는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 무의미의 궤도를 단숨에 뒤흔든다. 인류가 태양을 먹어 치우는 미생물 '아스트로파지'라는 최악의 재앙을 마주하면서,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그레이스의 삶은 인류의 생존이 걸린 '하이 스테이크(High-stakes)' 임무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서사적 역설이 발생한다.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간 재앙인 아스트로파지가 없었다면, 인류는 성간 비행을 할 목표도, 그리고 그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연료)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청춘을 위협하는 눈앞의 거대한 위기와 결핍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더 넓은 세계로 도약하게 만드는 추진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불운과 실수가 빚어낸 필연적 구원

 

영화의 플롯을 촘촘히 뜯어보면, 극을 전진시키는 힘은 철저한 계산이나 완벽함이 아니다. 오히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실수와 불운이다.

 

그레이스가 헤일메리 호에 타게 된 것부터가 비극적인 사이언스 팀의 폭발 사고 때문이었다. 우주선에서 다른 동료들이 모두 사망하는 불운이 있었기에 홀로 남은 그레이스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1인용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실수 역시 구원의 도구가 된다. 지구의 과학자들은 상대성 이론의 오차를 간과해 우주선의 연료를 과하게 채워 넣는 치명적인 무지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훗날 우주에서 만난 외계 생명체 로키에게 아낌없이 연료를 나눠주고 그들의 행성을 구하게 만드는 결정적 자원이 된다. 우주선 내부의 배양기가 새는 절체절명의 사고는 지구로 돌아가려던 그레이스의 마음을 돌려, 위험에 처한 친구 로키를 구하러 가게 만드는 용기의 방아쇠가 된다. 다가오는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인 비굴한 마음이, 오히려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 본능적으로 생존하게 하는 박동으로 작용한 것이다.

 

 

상처받은 자들의 우주적 연대

 

이 영화는 ‘역사적 위인은 태어날 때부터 떡잎이 달랐다’라는 천재 신화를 거부한다. 그리고 철저히 타자와의 관계와 우정 안에서 답이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외계 생명체 로키와 인간 그레이스는 생물학적 구조도, 감각 기관도, 언어의 체계도 전혀 다르다. 인간의 언어는 선형적이지만 소리로 세상을 보는 로키의 언어는 화성(Chord)에 가깝다. 번역기 없이는 소통조차 불가능한 이 결핍된 존재들은 서로의 옆 칸에서 벽을 두드리는 작은 신호로부터 대화를 시작한다.

 

이들의 만남은 혈연이나 국가, 혹은 이익으로 묶인 전통적인 집단이 아니다. 오직 생존이라는 목적과 고립이라는 공통의 상처를 매개로 맺어진 새로운 형태의 연대다. 어쩌면 이는 현대 대학가에서의 스터디, 에브리타임의 익명 글, 혹은 작은 소모임을 통해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20대들의 새로운 식구의 모습과 겹친다. 혼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었던 우주적 난제들은, 두 상처받은 존재가 유치하게 티격태격하며 쌓아 올린 우정의 틈새에서 비로소 해결책을 찾는다.

 

 

‘너와 나’에서 ‘우리들의 행성’으로

 

처음 그레이스와 로키의 목적은 명확히 분리돼 있었다. "나는 지구를 구하고, 너는 네 행성을 구한다." 각자의 이익을 좇는 철저한 개인주의적 접근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불운의 풍랑을 함께 넘으며, 이들의 대화 속 주어는 서서히 확장된다. 어느 순간 그들은 "우리는 우리들의 행성을 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내가 아닌 '우리'가 되는 순간, 타인의 비극은 곧 나의 일이 된다. 그리하여 그레이스는 마침내 보장된 지구로의 귀환을 포기하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 좁고 어두운 우주 속으로 기꺼이 발을 돌린다.

 

우리는 지금 각자가 고립된 방이라는 우주선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분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작은 오차나 실패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20대는 쉽게 스스로를 좌절한 자로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쏘아 올린 연대의 신호탄은 우리에게 뜻밖의 위로를 건넨다. 삶을 덮치는 실수의 파도와 불운의 바람이 거셀지라도, 타인을 향한 선의라는 조타를 꽉 잡고만 있다면, 그 풍랑은 배를 침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가장 가치 있는 좌표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고 말이다.

 

 

[작품 정보]

<프로젝트 헤일메리> (2026, 156분)

감독: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 주연: 라이언 고슬링, 조연 : 제임스 오티즈 (로키 목소리), 산드라 휠러, 라이오넬 보이스 등 / 제작: 아마존 MGM 스튜디오 / 수입·배급: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조예원 대학알리 기자 (yewon0210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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