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0 (수)

대학알리

[학식 먹고 한 페이지] 저출생을 걱정하면서, 이미 태어난 아이는 놓쳤다

부모 자격에 통제된 아이들
같은 교실, 남겨진 미등록 이주아동
‘한시적 구제’로 지킬 수 없는 권리

가족 행사가 가장 많은 달로 꼽히는 5월.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달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게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정말 평등한가. 과연 모든 아이가 ‘가정’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고 있을까. 우리가 눈여겨보지 못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이제는 그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이다. - 편집자주


한국 사회에는 같은 하늘,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법적으로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미등록 이주아동’이다. 부모의 체류 자격 문제 등으로 인해 출생 신고나 체류 등록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한국어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지만, 제도 바깥에 놓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교육·복지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

 

 

현행 대한민국 국적법은 출생 당시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대한민국 국적자여야만 자녀 역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부모 모두 외국인이라면 한국에서 태어나더라도 자동으로 국적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출입국관리법상 미성년 자녀의 체류 자격은 부모의 체류 상태에 종속된다. 결국 부모가 미등록 체류자가 되면 자녀 역시 함께 미등록 상태로 밀려나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선택권은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로 국적을 선택한 것도, 체류 상태를 결정한 것도 아니다. 단지 부모의 행정적 상황에 따라 ‘등록되지 않은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이는 ‘아동은 출생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국적을 취득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7조와도 충돌한다.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조명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삶을 기록하며, 장기체류 이주아동에게 안정적인 체류 자격 제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책 속 사례 중 하나인 김민혁 씨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2003년 이란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다. 어린 시절 친구를 따라 교회를 방문하며 새로운 문화와 종교에 관심을 두게 되었지만, 그 선택은 가족과의 단절로 이어졌다. 이후 난민 신청과 행정소송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벽에 부딪혔고, 결국 그는 한국을 떠나라는 출국 명령서까지 받게 된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민혁 씨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었던 곳은 학교였다. 그의 상황을 알게 된 국어교사와 친구들은 함께 움직였다. 친구들은 피켓 시위를 준비했고,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 섰다. 친구의 친구까지 모인 180명의 학생은 “함께 살고 싶다”는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기적처럼, 난민 인정률 0.1%라는 현실 속에서 민혁 씨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권리를 불안정한 ‘선의’에 맡기고 있다. 누군가는 친구들의 응원을 만나 살아남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채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아동의 권리가 개인의 행운과 주변의 도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 2021년 법무부는 ‘국내 장기체류 이주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을 마련해 일정 요건을 충족한 아동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했다. 이후 제도는 일부 개선됐고, 2028년까지 연장되기도 했다. 실제로 2,700명 이상의 아동과 부모가 체류 자격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분명하다. 이 제도는 어디까지나 ‘한시적 구제책’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연장 여부를 걱정해야 하고, 기준에 포함되지 못한 아이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는다. 아동의 삶이 임시 제도의 연장 여부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저출생으로 국가 소멸 위기를 이야기하는 시대다. 더 많은 아이를 낳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미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들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만다. 영국은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더라도, 아이가 일정 기간 이상 영국에 거주했다면 국적 취득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아이들을 ‘관리의 대상’로 바라보는 데 머물러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그 ‘마을’의 범위를 국가와 제도까지 넓혀야 할 때다. 한시적 숙제를 반복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최소한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말이다.

 


송연주 대학알리 기자(thdduswn8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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