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8 (월)

대학알리

아무도 헤아리지 못한 소녀의 마음

영화 "죄 많은 소녀" - 김의석 감독

 

[대학알리 유수미] 영화 <죄 많은 소녀>는 제목과 다르게 잘못 없는 한 소녀의 억울한 심정을 조명하며 전개된다. 감독은 잘못 없는 소녀가 왜 죗값을 치러야 하는지 그 이면을 파헤치며 제목의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시작은 혼자 있는 소녀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결말은 사람들의 추궁을 짊어진 모습으로 끝이 나기에, 영화 제목 <죄 많은 소녀>는 영희의 책임이 아닌 사람들의 무책임을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영희는 왜 죄 많은 소녀가 되어야 했던 것일까?
 

친구 경민이 사라지자 영희는 갑작스럽게 범인으로 지목되며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게 된다. 형사의 취조에도, 친구의 어머니에게도 자신의 무죄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만, 어른들은 영희에게 모든 화살을 돌릴 뿐이다. 영희의 심장에는 날카로운 화살이 꽂혀 피가 났고,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눈물을 흘리고 억울한 심정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어두운 거리를 홀로 걷는 영희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고, 그녀는 차가운 공기에 짓눌려 점차 목소리를 잃어갔다. 영희가 아파하는 동안 선생님과 반 친구들, 그리고 친구의 가족들은 ‘진실 없는 진실’을 찾기 바빴다. 정답 없는 진실을 찾는 과정 속에는 늘 영희가 있었고, 영희는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에 침식당해야 했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 창백한 말, 그리고 표정 없는 얼굴에 둘러싸이자 영희의 어깨는 점차 움츠러들어갔다.

 


영희를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는 영희가 경민이와 함께 있는 것이 질투 나서, 영희가 경민이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으니까, 다들 영희를 지목해서였다. 사랑은 질투가 되고, 사실은 거짓이 되고, 집단은 동조가 되어 그 피해는 영희에게 돌아왔고, 영희의 눈에는 언제나 툭 치면 쏟아질 것 같은 눈물만이 고여 있었다. 목소리를 내뱉은 것은 그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희는 목소리를 잃었다. 수백 번 억울함을 토로해도 그들은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영희는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과를 받기 위해서 귀에 상처를 내지 않았지만 영희의 귓가에는 여전히 창백한 단어가 맴돌 뿐이었다. 결국 영희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바람 소리만을 귓가에 담았다.

 

영희는 슬픔을 토로하고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썼지만, 사람들은 영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들의 외침 끝은 공허함뿐이었고, 영희에 관한 의심은 날카로운 화살촉일 뿐이었다. 그들은 진실을 위해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무마시킬 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있어야 수사를 마칠 수 있고 모든 것이 빠르게 종료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른들은 경민의 죽음의 이면을 진정으로 알려 하지 않았고, 수사는 진전이 없었던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진심 없는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진실은 찾지 못한 채 끝이 났지만, 사람들은 그 과정을 책임지지 않았다. 과정의 몫은 사람들이 아닌 영희가 다시금 떠안게 되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영희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영희가 목소리를 잃고서, 영희의 아픔을 확인하고서 하나둘씩 영희의 곁에 왔을 뿐, 영희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이는 없었다. 영희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었고, 그렇게 영희는 환경을 포기했다. 말로 인해 상처 입은 영희를 위해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니 과거는 잊고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비록 현재는 서글프겠지만 앞으로의 마음에는 따뜻한 햇볕이 스며들 것이라는 말도. 영희의 눈동자에는 눈물만이 서려있었지만 그녀의 앞날에는 희망이 깃들어있었으면 한다. 그들의 마음은 평생 감옥일 테니 원망 말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 나가길 바란다. 복수, 죽음, 그리고 용서,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은 채 앞으로의 시간은 자기 자신만을 향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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