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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고서] 3편. 김미옥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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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상상과 눈치

김미옥은 1996년, 대전 충남대병원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다. 이곳저곳을 살피며 어디에 머물지 알아보는 중이다. 그녀는 자신의 방을 열네 살이 돼서야 얻게 됐다. 그전까지 가족들의 갈등과 불화를 목격했다.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는 게 습관이 됐다. 아니, 습관인지 태생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김미옥은 눈치가 빠르다. 눈치는 그녀의 생존방식이었고, 그건 여전히 유효하다.

 

빠른 눈치가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상대방의 호와 불호를 짐작할 수 있다. 불필요한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종종 눈치에 압도당할 때가 있다. ‘눈치가 빨라.’라는 말은 남의 기분을 잘 알아챈다는 듣기 좋은 소리일 수 있지만, 그 속도감과 예민함이 100% 정답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여전히 그녀의 마음 한편엔 불안이 존재한다. 눈치에 압도당한다는 건 결국 그녀가 그녀 자신을 살피지 못하게 된다는 것과 동일하다. 김미옥은 그건 자신에게도, 그리고 결국 남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만 눈치를 많이 보게 되면 그 끝은 파괴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김미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유지하는 건 결국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녀에게 사랑은, 인생이라는 게임의 기본 스탯이다. 그런 그녀가 사랑을 원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녀는 사랑받기 위해 온갖 눈치를 곤두세웠다. 사랑받지 못한 나날이라 여겼다. 지금 와서 보니 눈치채지 못한 나날이었다. 사랑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물론 받은 사랑을 알아채지 못한 게 그녀의 잘못은 아니다. 그녀는 어렸고, 아팠다. 그들의 방식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렸고, 고단했다.

 

 

흔히들 학창 시절이 제일 그립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미옥은 그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그녀에게 학교는 전투장이었다. 오해와 불신 속에 그녀는 베일 수밖에 없었다. 왕따를 당했다.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내내 하루도 맘 편히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키가 자라고, 머리가 커질수록 그녀는 우정 어린 사이를 기대하기보단 포기하게 됐다.

 

서로 틀린 게 아니라 달랐을 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 당시에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다만 그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다름을 틀림으로 여겼던 나이였고 시대였다. 차이를 따돌림으로 전개하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할 말은 했다. 하지만 말할 수 있다고 상처를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어려서부터 그녀는 혼자서 사람을 감당해야 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고군분투였다.

 

 

홀로 있던 그녀가 자주 해온 건 상상이었다. 그녀는 시간의 공백을 꿈으로 채운다. 상상 속에 그녀는 자신이 되어보지 못했던 것이 된다. 원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본다. 다른 방향으로도 상상해본다. 미래의 김미옥은 뭐가 되어 있을까, 뭐를 하고 있을까. 그녀는 시간의 공백을 이것들로 채운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상상이 부끄러웠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이룰 수 없는 공상들이다. 꿈을 꾼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상상은 김미옥에겐 동력과 같은 것이다. 상상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자 알게 됐다. 우울증을 앓은 후, 그녀에겐 상상이란 게 사라졌다. 김미옥은 꿈꾸는 사람이었다. 갖은 상상으로 기대하며 살아왔던 그녀가 더이상 꿈꾸지 않았다. 삶을 꿈꾸지 않았다.

 

요즘 그녀는 다시 상상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설레발이다. 하지만 그런 상상과 생각이 모여 그녀가 된다. 그녀의 꿈(夢)이 그녀를 구성한다. 어떤 집에 살지, 어떤 방으로 꾸미게 될지, 미래에 대한 기대로 그녀를 채운다. 또 다른 꿈속에선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해낼 수 있다. 그곳에선 만약이라는 가정이 현실이 된다. 사실 그 ‘만약’들엔 김미옥의 콤플렉스가 관여돼 있다. 내가 얼굴이 예뻤다면, 내가 날씬했다면, 내가 조금 더 무던한 사람이었다면, 쿨하고 시크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상을 하는 게 그녀의 열등감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은 더 예쁜 나, 더 능력있는 나, 더 나은 나를 원한다. 그래서 그녀의 상상은 발전과 완벽을 요구하는 세상이 할퀸 상처의 발로다. 사실 알고 있다. 예쁘지 않아도, 날씬하지 않아도, 무던하지 않아도, 쿨하지 않아도 괜찮다. 알고 있어도 상상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끊어내는 것 역시 김미옥만의 몫이 아니다.

 

김미옥은 이런 상상과 상처를 당신과 함께 부둥켜 가고 싶다. 홀로 있던 김미옥의 곁을 채워준 사랑들처럼, 그녀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홀로 있을 이들의 가족이 되고 싶다. 그녀는 세상이 말하는 가족만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아도 안전하다는 걸, 외롭지 않다는 걸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고 싶다. 그녀의 주변과 가족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싶다. 넓고 깊게 마음을 나누는 마을에 살고 싶다.

 

 

김미옥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 딱히 사랑이 차고 넘치는 스타일이라 그런 건 아니다. 이 세상 자체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사람이 좋다. 사랑이 좋다. 비록 그녀의 사랑은 시기별로 모양을 조금 달리했지만 그녀는 결국 사랑의 모양새를 정의하는 것보단 사랑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녀의 정체성은 결국 사랑이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존재. 스무 살 이전까진 가족에게, 친구에게, 애인에게 끊임없이 그걸 갈구했다. 서로 주고받는 것들의 모양이 달라 사랑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웠다. 이런 시행착오는 대학에 와서도 이어졌다. 서로를 몰랐다. 표현방식이 달랐다. 서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지 못했다.

 

대학에 와서 들어간 동아리에서 사랑을 배웠다. 서로 다른 사람투성이였다. 서로 부딪히며 살을 부대끼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온기를 나누고 서로의 역사를 나눴다. 거기서 서로의 모양을 배웠다.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고 나니 자신은 여태껏 사랑받지 못한 게 아니라 알아채지 못했던 거라는 걸 알게 됐다. 역시 인생이라는 게임에 사랑은 필수적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김미옥의 사랑은 시공간을 차지한다. 부피를 가진다. 같이 먹는 와플, 친구가 빌려준 지우개처럼. 사랑은 내뱉는 말에서, 이모티콘에서, 먼저 숟가락을 놔주는 것에서 발현된다. 사랑은 그런 것들에 묻어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짝사랑의 상대를 그리느라 잠 못 이루는 밤과 섣부른 위로를 내뱉기보단 가만히 기다리는 침묵 역시도. 사랑은 시공간에 존재한다. 형태가 있는 것들에 담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감정과 다르다. 시공간으로 발현돼야 한다. 그게 김미옥이 말하는 사랑이다.

 

 

사랑과 상상과 눈치가 중요한 김미옥은 이렇게 살았고, 살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눈치를 보고, 여전히 상상하고, 여전히 사랑할 테다. 그렇게 살아가는 김미옥은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운 삶을 살아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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