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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고서] 1편. 오은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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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위로와 글

 오은진은 1997년, 충무로 제일병원에서 태어났다. 수많은 이사를 거쳐 지금은 돈암동에 살고 있다. 그녀에게 가족이란 할머니, 이모, 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사촌들을 포함한 11명의 존재였다. 사실 오은진은 엄마의 딸이라기보단 엄마의 막냇동생쯤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녀에게 가족은 책임감과 무거움으로 얼룩진 대상이었다.

 

 

그녀는 10살에 큰삼촌의 죽음을 겪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설날에 함께 떡국을 먹던 삼촌이 3개월 만에 숨졌다. 암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충격에 빠졌다. 특히 그녀의 엄마는 슬픔에 휩싸였다. 애초에 그들의 형제는 매우 우애가 깊었다. 그녀의 엄마는 딸을 까먹은 듯했다. 오은진은 그걸 지각한 이후로 종종 호흡을 거부했다. 자신의 존재는 장례식장에서나 발견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18살에 친구의 죽음을 겪었다. 이 역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오은진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허구한 날 울어댔다. 그녀의 엄마는 그런 그녀를 보고 그 친구와 그렇게 친했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그들의 관계는 같이 급식을 먹고, 매점을 가고, 시험이 끝나고 놀러 가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건축가가 되어 그녀의 집을 지어주기로 되어있었다. 그 관계엔 미래가 있었다. 그녀는 그 질문 이후로 입을 닫았다.

 

 그녀는 22살에 사촌 언니의 죽음을 겪었다. 이 역시 갑작스러웠다. 그녀의 가족은 사촌 언니의 장례식을 포기했다. 오은진에게 세상이란 숨을 쉴 때도 똥을 눌 때도 죽을 때에도 돈이 필요한 곳이었다. 다들 그 정도면 오래 살았다고 위로했다. 그녀의 사촌 언니는 28년간 와병 환자였다.

 

 그녀는 10살 땐 슬픔을 강요당했고, 18살 땐 슬픔을 이해받지 못했으며, 22살 땐 슬픔을 포기했다. 일련의 사건으로 그녀는 이야기할 때 숨을 내쉬는 법을 까먹었다. 그래서 그녀는 '발설' 그 자체가 어려웠다. 오은진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였다.

 

 

 세 번의 죽음 이후, 그녀에게 글쓰기는 분노였다.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세상과 가족에 대한 분노였다. 오은진은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두려웠고, 그녀 생각에 유서는 쓰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을 보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것이었다.

 

 

 사실 처음 그녀의 글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긴 짝사랑의 고백을 거절당한 순간에도 글을 썼다. 시처럼 썼다. 그녀에게 글은 문학이었다. 그녀가 읽은 게 문학이어서 그랬다. 그녀는 이상의 “날개”에 적힌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문장을 제일 좋아했다. ‘천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그녀는 공부를 곧잘 했다. 좋은 성적표를 들고 가면 엄마는 오은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녀는 자신이 ‘천재’가 되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는 엄마의 눈길과 위로가 필요했다.

 

 중학생 이후 그녀에게 글쓰기는 돈이었다. 몇백 자 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 사람들이 돈을 줬다. 선생님은 그녀에게 그녀의 가난을 어필하되, 비굴하게 쓰지는 말라고 했다. 의연한 태도가 가장 중요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글을 쓰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 비굴함과 의연함의 줄타기가 너무 어려웠던 탓이다.

 

 20살 이후에도 그녀의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그녀의 전공은 국어국문학이다. 좋은 성적을 받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선 글을 잘 써야 했다. 그녀는 전공을 공부하며 자신의 문제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발견했다. 세상엔 힘든 사람이 많았다. 아니,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과제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썼다. 그녀의 문제가 결국 모두의 문제였다. 오은진은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과제 분량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글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그녀의 첫 글쓰기가 자기 위로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는 위로받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 그녀의 전공이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녀가 들었던 섣부른 위로들은 오히려 그녀를 더 힘들게 했다. 그녀를 가장 잘 위로하는 건 자신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를 쓴다.

 

 

 오은진은 자신이 겪었던 누군가의 죽음을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도 않다. 죽음을 대하는 세상의 태도가 그녀를 마음대로 슬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 그녀는 넋 놓아 울고 싶다. 자유롭게 슬프고 싶다. 그러려면 사람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은 것과 다름없이 잠만 자는 날이 많다. 하지만 그녀 주변에 누군가가 ‘사실 나 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면 오은진은 그 친구를 꽉 붙잡아 놓아주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녀는 그 친구가 부디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죽음을 끊임없이 열망하면서도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이 모순된 마음을 결국 당신의 삶과 숨을 보듬어 가는 동력으로 삼고 싶다. 죽음과 위로와 글이 중요한 오은진은 그렇다면 살고 싶고,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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