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와 소수 사이, 좁혀지지 않는 참정권의 틈

  • 등록 2026.09.07 16: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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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혼란 넘어, 참정권 보장의 실질적 조건 돌아볼 때
정보 접근성부터 현장 제도까지… 장애인 참정권에 존재하는 장벽들

* 해당 기사는 '외대알리 지면 41호: 틈'에 실린 기사로, 2026년 8월에 작성되었습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참정권 보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했다. ‘나의 한 표’가 올바르게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제도와 행정 전반의 개선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참정권 침해 문제는 이러한 일회성 행정 차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제도적·환경적 이유로 권리 행사에 어려움을 겪어온 장애인 유권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과제로 남아있다.

 

투표권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보장돼야 할 기본권이지만, 장애인 유권자들은 이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축약된 점자 공보물, 경사로나엘리베이터가 미비한 투표소 환경, 현장 보조 지원 규정의 불명확함 등이 대표적이다. 다수와 소수 사이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참정권의 틈을 짚어보기 위해 본지는 장애인 유권자의 선거 참여 환경을 살펴보았다.

 


장애인 참정권, 선관위의 대응은 충분했나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장애인 유권자들은 후보와 정당의 공약을 파악하는 데 있어 비장애인 유권자와 동등한 수준의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비장애인 유권자가 각 가정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물을 통해 후보자의 공약과 정책을 비교할 수 있는 반면, 시각장애인 유권자는 시작부터 심각한 정보의 격차를 마주한다.

 

그러나 일반 문자로 작성된 내용을 점자로 변환할 경우, 지면 특성상 최소 3배에서 4배 이상의 부피가 필요하다. 법적 면수 제한으로 인해 후보자들은 결국 공약의 세부 내용이나 이력 등 핵심 정보를 축약하거나 대거 삭제한 점자 공보물을 발송하곤 한다.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임에도 시각장애인 유권자는 선거 정보를 얻는 출발선부터 차별을 겪는다.

 

 

지방선거의 기초 및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단체장이나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지방의원 선거는 후보자의 점자 공보물 제작이 법적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남아있는 사각지대다. 이로 인해 상당수 후보가 점자 공보물을 아예 제출하지 않아 지역 시각장애인 유권자들은 후보자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겠다며 도입된 대체 매체들 역시 현실적인 한계가 명확하다. 공보물 상단에 인쇄되는 음성변환용 바코드(보이스아이)는 점자 안내가 없어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바코드의 위치를 찾아 스캔하기 어렵고, 인쇄 상태에 따라 인식 오류가 빈번하고, 동봉되는 USB나 CD 등 디지털 저장매체 또한 후보자마다 파일 형식이 제각각이거나 음성 출력이 불가능한 이미지 형태의 PDF로 제출되어 스크린리더 프로그램으로 읽을 수 없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정보 접근성의 한계는 시각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이나 쉬운 언어 선거공보물, 청각장애인을 위한 전문적인 수어 통역 정보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후보자의 공약과 자질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투표에 참여하라는 것은 장애인 유권자에게 권리 행사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선거공보물에서부터 시작되는 정보의 틈은 소수자의 정치적 알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

 

발달장애인과 일부 고령 유권자는 이런 제도적 절차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 보조 대상이 시각·신체장애인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투표 보조 대상 확대를 요구한 공익소송은 1·2심 모두 원고측이 승소했으나,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림투표용지 도입 관련 소송 이후에는 선관위의 연구사업만 이끌어냈을 뿐 법 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투표소에서 확인한 접근의 문턱


 

선거공보를 통해 표심을 결정했다 하더라도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다면 한 표를 행사할 수 없다. 투표소의 물리적 접근성은 장애인의 참정권을 현실화하는 마지막 조건이다. 그렇다면 실제 투표소의 모습은 어떨까. 취재진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소로 운영된 이문1·2동 투표소 가운데 이문1동주민센터, 고황경로당, 이문체육문화센터, 이문e편한세상아파트 경로당을 직접 찾아 접근 환경을 살펴봤다. 학교와 공동주택 등은 내부 확인이 어려운 나머지, 투표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의 공개 자료를 통해 편의시설 설치 현황을 확인했다.

 

이문1동 제1투표소가 설치된 이문1동주민센터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잘 갖춰져 있었다. 건물 외부에는 비교적 긴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고, 점자유도블록도 경사로를 통해 건물로 진입하는 방향에 놓여 있었다. 투표소는 4층 다목적강당에 있었지만 기자가 직접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4층까지 이동할 수 있었으며 출입문과 복도에서도 이동을 방해할 만한 요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선관위 자료에도 해당 투표소에는 승강기, 점자유도블록,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이문2동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확인됐다. 제3·4투표소가 설치됐던 이문체육문화센터는 1층 로비와 체육관을 투표소로 두었고, 건물 입구 양쪽에 경사가 완만한 경사로와 점자유도블록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투표소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이문1동 제6투표소로 이용된 고황경로당은 1층에 위치했지만 출입구 앞에는 한두 칸가량의 계단이 있었다. 계단에는 벽돌 등을 이용해 만든 짧은 경사면이 놓여 있었으나, 취재진이 확인한 범위에서는 별도의 장애인용 경사로가 보이지 않았다. 이문2동 제5투표소가 마련됐던 이문e편한세상아파트 경로당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 경로당을 직접 확인한 결과 출입구에는 계단이 있었고, 취재진이 살펴본 동선에서는 이를 대신할 경사로를 확인할 수 없었다. 투표소가 1층에 있더라도, 입구에 단차가 있다면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성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출입구 앞에 계단이나 높이 차가 존재한다면 이를 해소할 경사로나 별도의 이동 동선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내부 시설이나 학교 등 취재진이 직접 방문하지 못한 투표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선거일투표소 현황을 통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인했다. 선관위 자료상 총 이문1·2동 투표소 13곳 중 이문1동 제2·3·4·5투표소 등 4곳에서 점자유도블록은 편의시설 항목에 기재돼 있지 않았다. 장애인화장실은 이문래미안1차아파트 관리동과 고황경로당, 2곳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2층에 위치한 이문래미안1차아파트 관리동은 승강기와 점자유도블록, 장애인화장실이 모두 기재돼 있지 않았다.

 

 

다만 선관위가 공개한 현황표에는 경사로가 별도의 편의시설 항목으로 제시돼 있지 않아, 직접 방문하지 않은 투표소의 장애인 경사로는 이 자료만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편의시설란에 특정 시설이 기재돼 있지 않다고 해서 실제 시설이 없다고 완전히 단정할 수는 없다.

 

선관위 자료만으로는 장애인 유권자의 실제 투표소 접근성이 충분히 보장됐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투표소 접근성은 개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 유무를 넘어, 장애인 유권자가 실제로 투표소에 도착해 기표소까지 이동하고 투표를 마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권고는 있었지만, 바뀌지 않았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경기장차연)는 서면 인터뷰에서 “선거공보물에 대해서 발달장애인 대상 쉬운 정보, 시각장애인 대상 점자공보물들이 필수 자료가 아닌 탓에 후보자에 대한 정보 자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며, 또한 “투표보조인을 고용할 수 없는 발달이나 정신장애인의 경우 투표 과정 전반에 대해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정보접근성의 공백은 제도의 허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있다. 점자형 선거공보 의무 제출 대상은 대통령·국회의원·자치단체장 후보에 그쳐, 정작 생활과 밀접한 광역·기초의원 후보는 빠져 있다. 투표 보조 규정도 시각·신체장애인에 한정돼 있어, 발달장애인의 투표 보조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부족해 현장 판단에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다.

 

경기장차연은 서면 인터뷰에서 이 같은 한계가 실제 후보자들의 선거 정보 제공에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경기장차연 관계자는 “정보 제공이 충분하지 않았고 정보 접근성을 보장한 후보는 매우 소수였다”며 “해당 후보들의 경우에도 아주 필수적인 정보를 점자로 제공하는 정도에 그친 정도라는 점”을 지작하였다. 또한 “정보 전반에 대한 텍스트 변환자료 혹은 쉬운 읽기자료를 제공해야 하나, 권고일 뿐 의무사항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후보가 그러한 자료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해왔다. 인권위는 지난 1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에 점자형 선거공보 면수 제한 폐지, 책자형·점자형 공보물의 내용 통일, 선거방송 토론회 수어통역사 배치 확대, 모든 투표소의 1층 또는 편의시설 구비 등 을 권고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시행된 공직선거법 개정 내용에는 광역·기초의원 후보의 점자공보 의무화나 면수 제한 폐지 등 핵심 권고 사항이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

 

선관위의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장애인단체들이 오랫동안 참정권을 주장하고 소송까지 해왔지만 선관위는 한 번도 주도적 으로 움직인 적이 없다”며 “법관과는 면담조차 없었고 실무자들은 안 된다는 답만 반복하다 소송까지 가서야 연구사업이라도 하는 게 지금의 선관위”라고 지적했다. 단체 관계자는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할 선관위가 그 역할을 방기해 온 구조가 오늘의 부실선거로 드러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22대 국회에는 투표 보조 대상 확대 등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현재까지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계류 중이다.

 


참정권의 틈, 이제는 제도로 메워야


 

전문가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도 정비와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장차연 관계자는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법적 의무사항이 제도화되고, 선거에 나오는 후보들 대상으로도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경기장차연은 “선거권은 단지 법률에 적혀 있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투표소에 안전하게 접근하고, 불편과 차별 없이 투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보장되는 권리”라며 “장애인의 참정권은 시혜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고 강조하며 정부와 선거관리위원회에 실질적인 접근권 보장을 촉구했다.

 

선거는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꽃은 높은 가지 위에 피어 있어 여전히 닿을 수 없다. 장애인 유권자의 참정권 제약은 개인의 일시적인 불편을 넘어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투표소 출입구의 단차를 없애는 물리적 접근성 확보부터, 점자 공보물 면수 제한 폐지 및 대체 형식 의무화, 투표 보조 대상의 현실적 확대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더 이상 시민사회의 공익소송과 인권위의 권고에만 의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국회는 조속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구속력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며, 선거관리위원회는 수동적 행정 관행에서 벗어나 현장의 장벽을 선제적으로 철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모두를 위한 선거’가 선언에 머물지 않으려면 법에 규정된 권리가 실제 투표 현장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다수와 소수 사이의 참정권 틈을 메우는 일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와 선거권의 실질적 보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박승현 기자 (tiger220438@gmail.com)

박진태 기자 (pjt30212@naver.com)

안재민 기자 (jaemincool30@gmail.com)

이대연 기자 (eodus0617@naver.com)

안재민 jaemincool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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